• 최종편집 2019-11-14(일)

"칼 바르트의 예정론, 하나님 은총과 인간의 자유는 같이 간다"

전 장신대 총장 김명용 박사, 최근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자유-바르트 이후 신학의 예정론의 새 관점' 주제로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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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11.08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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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르트 예정론.jpg

 

전 장신대 총장 김명용 박사는 최근 온신학회 아카데미의 2회차 강연을 천호동 광성교회에서 진행했다. 이번 주제는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자유-바르트 이후 신학의 예정론의 새 관점’이었다.

먼저 김명용 박사는 칼빈의 예정론을 인용하며 “인간의 구원은 철저한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에 따른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그리스도의 속죄와 은총은 결국 선택된 사람에게만 유효하다”며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의 선행이나 행위에 결코 근거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이와 같이 그는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유기 곧 창세 전 지옥으로 떨어질 사람도 미리 계획하셨다”고 했다. 다음은 김 박사가 인용한 칼빈의 말이다.

 

“어떤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사전에 정해졌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영원한 저주에 처 해지도록 사전에 정해졌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전자의 목적이나 후자의 목적으로 창조되었을 때, 우리는 그들이 생명으로 예정되었다. 혹은 죽음으로 예정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성경이 뚜렷이 밝혀주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영원하고 불변의 계획에 의해 오래 전에 구원을 줄 사람을 정해 놓으셨으며, 반면에 멸망에 처해질 사람도 미리 정해 놓으셨다고 주장할 수 있다”

김 박사에 따르면, 칼빈은 이를 위해 로마서 9장 13절-16절, 18절을 인용했다.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그런즉 우리가 무슨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9:13-16)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롬9:18)

 

이처럼 김명용 박사는 “칼빈은 하나님의 전적 선택 교리를 위해, 인간의 전적 무능을 주장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전적 무능이란 하나님이 구원받을 자를 절대적으로 선택하기 위한 전제로서, 구원은 인간의 선행이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결국, 구원 받기로 선택 받은 사람에게는 한없는 위로겠지만, 지옥에 떨어지기로 예정된 사람에게는 한없는 절망인 것이다.

그러나 김 박사는 “이러한 예정론의 잘못된 인식은 기독교 역사 속에서 뿌리내렸다”며 “도리어 칼 바르트에 의하면, 예정론은 ‘복음의 총화’”라고 역설했다. 그렇다면 예정론이 잘못된 교리 체계로서 비판받은 지점은 어디일까?

 

김 박사는 칼 바르트를 빌려 “하나님의 예정을 고정된 체계로 바꿨기 때문”이라며 “만일 병상에서 누워 죽어가는 사람에게, ‘부르심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 받은 자는 적다’라는 말만 한다면, 이는 복음전도의 절박성을 훼손시키는 예정론의 오용”이라고 비판했다. 이는 칼 바르트가 1936년 했던 강연에서 한 말이었다.

도리어 김명용 박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저주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었다는 사실 자체가 모든 이들에게 보증된 확실한 예정”이라고 역설했다. 이를 위해 김 박사는 1942년 출간된 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Ⅱ, 2(KD Ⅱ,2)를 빌려 논지를 전개했다.

그는 “칼 바르트가 본 하나님의 예정은 하나님의 자기규정(Selbstbestimmung Gottes)을 의미 한다”며 “하나님은 인간을 버리기로 예정하신 분이 아니라, 인간을 선택하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에서 버림받으신 예수님”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그는 “인간을 버리기로 작정한 전통적 예정론은 십자가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모습과 하등 상관없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그는 “십자가에 계시된 하나님의 모습은 영원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인간을 선택하기 위한 결의”라고 덧붙였다. 결국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계시된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이라고 재차 밝혔다.

특히 그는 “하나님은 자신의 본질과 위배되는 일은 결코 하실 수 없다”며 “그렇기 때문에 일군의 무리를 지옥으로 예정하는 하나님은 폭군의 모습이지, 십자가에 계시된 자비로운 하나님은 아니”라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칼 바르트가 바라본 '이중 예정'의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선택과 유기라는 이중예정은 하나님이 인간을 영원히 '선택'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유기'하신 사건”이라고 전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으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고 강조했다. 김 박사에 따르면, 칼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에게서 “버림받으신 단 한 분”(Der einzige Verworfene)“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칼 바르트가 말한 구원에 있어, 인간에게 부여된 책임은 무얼까? 김 박사는 “하나님은 이미 영원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을 선택하셨다”며 “이를 위해 십자가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히 유기하셨다”고 했다.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행위는 언제나 은총이고, 선택”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다만 그는 “하나님은 모든 이를 선택하셨지만, 선택이 적용되기 위해선 결국 개인의 믿음이 요구 된다”고 지적했다.

 

즉 그는 “예수님이 당신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은 이미 발생된 일”이라며 “그러나 개인이 하나님의 자비를 거부한 순간, 이미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버림받은 존재”라고 전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폐기된 버림의 그늘”이라고 말했다. 하여 김 박사는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를 택했지만, 구원은 각 개인이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음으로 선택했을 때 구현되는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는 '각 개인이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받아들이느냐 마느냐'에 따라 갈리는 사건이라는 게 김명용 박사의 전언이다.

이 대목에서 김 박사는 칼빈이 예정론을 주장하기 위해, 인용한 로마서 9장의 참 의도를 설명했다. 그는 “하나님이 그분의 결단에 따라 야곱은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하실 수 있는 것”(롬9:12)을 두고 “이방인을 사랑하시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전적 주권을 드러내고자 한 말”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당시 유대인들은 선민사상에 젖어있었기에,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일 이었다”며 “결국 로마서 9장은 하나님의 주권에 기인한 파격적 은총을 말하기 위해 기술됐다”고 역설했다. 하여 그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주권으로 이방인들을 사랑하시기로 작정했다고 해서 누가 감히 하나님을 힐문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호세아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롬9:24-25).

김 박사에 따르면, 바울은 “하나님께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의로 여기고, 유대인과 더불어 이방인까지도 하나님 백성으로 삼기로 작정하셨다”고 말한 것이다. 그렇기에 김 박사는 “로마서 9-10장은 하나님의 이중예정을 전하기 위한 본문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말하기 위한 본문”이라고 역설했다. 때문에 그는 “로마서 9장-10장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은총의 총화를 말하는 본문”이라며 “바르트의 예정론은 칼빈의 이중예정론보다 바울의 정신에 더 깊이 접맥돼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김 박사는 몰트만(J. Moltmann)을 빌려 “예정론은 신앙의 우연성(Zufȧlligkeit)과 무상성(Hinfȧlligkeit)을 반대하는 교리”라고 전했다. 즉 몰트만은 “예정론은 우리의 신앙이 기계적으로 얻어지는 것 같은 관점에서 언급되면 안 된다”고 강조하며, “왜냐면 그것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근원적으로 파괴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칼 바르트의 예정론은 ‘우리가 자유로운 결정에 따라 신앙을 갖게 됐을지라도, 이 마저도 우연한 결단’은 아님“을 재차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한 예화를 들었다. 그는 “왕자는 어느 날 마을을 다니던 중, 시골 여자에 반했다”며 “왕자는 시골 여자에게 왕궁으로 들어오라고 구애했다”고 전했다. 여기서 그는 “시골 여자는 왕자의 구애를 선택할 수도 있지만, 거절할 수 있다”면서 “그럼에도 왕자는 끝 까지 여자를 포기하지 않고, 구애를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결국 포기하지 않는 사랑 때문에, 여자가 왕자를 선택했다”면 “그것은 여자가 왕자의 구애에 감동받아, 자유의지로 왕자의 아내가 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로 한 결단”은 “먼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계시한 불가항력적 은혜가 있고, 거기에 감화됨으로 우리가 선택한 결과”라고 말했다. 때문에 그는 “예정론은 우리의 신앙이 우연도 아니고, 우리 안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며 “먼저 하나님의 섭리에 근거하고 있음을 밝히는 교리”라고 설명했다.

김 박사는 “바르트가 ‘하나님의 일방성이 아닌, 하나님과 인간 사이 상호 작용’을 말하고 있다”고 말하며, “기도 또한 ‘하나님과 인간 사이 고정된 것이 아닌, 열려있고 살아 있는 만남의 역사’”라고 했다. 김 박사에 따르면, 바르트는 “자기 뜻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했던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님 기도”처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기도”를 긍정했지만, 동시에 “하나님은 인간의 기도에 의해, 당신의 뜻을 바꾸기도 한다”고 말했다.다음은 김 박사가 인용한 칼 바르트의 말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뜻을바꾸시는 것, 곧 하나님께서 인간의 청에 순복하신다는 사실은 그의 약함의 상징이 아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장엄하심과 위엄의 영광 속에서 기꺼이 그렇게 하시기를 원하셨고 또 원하시고 계신 것이다... 그 속에 그의 영광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하여 김 박사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소원을 들으면서도, 그의 전능한 위엄을 얼마든지 드러내실 수 있다”며 “하나님이 인간의 기도를 들으시고, 뜻을 바꾸시는 것은 약함이 아닌 그의 위대하심에 기인 한다”고 밝혔다.

예로 김 박사는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생명을 15년 더 연장하셨다”고 했다. 이를 두고 그는 칼 바르트의 관점을 빌려 “하나님의 위엄에 손상이 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신성과 위엄의 영광이 한층 더 증대 된다”고 밝혔다. 즉 그는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더욱 깊게 느꼈을 것이고, 하나님의 이름은 히스기야를 통해 더욱 송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이를 통해 인간이 하나님께 감사하기를 원하시는 분”이라며 “이로써 하나님은 인간을 원하시고, 인간과 깊은 사귐을 맺길 바라시며, 인간을 통해 감사와 영광 받기를 간절히 기다리신다”고 힘주어 말했다.

끝으로 그는 루터의 말을 빌려 “인간이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화나게 하는 것”이라며 “예수께서도 기도하다가 결코 낙망하지 말기를 권하셨다”(눅18:1-8)고 전했다. 하여 그는 “소원의 응답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끊임없는 기쁨과 감사가 일어나는 통로”라며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시고, 인간이 완전한 자유로 하나님을 진심으로 감사하고 사랑하길 바라신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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