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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님과 함께" 스물세 번째 날 (20210123)
    "주님과 함께" 스물세 번째 날 -   샬롬! 여러분을 사랑하고 주님의 평강의 은혜가운데 문안합니다. "주님과 함께"는 제게 큰 축복이자 훈련장이며 동시에 제 통제권을 주님께 드리는 증명서입니다.  때로는 저도 하나님께서 저에게 성경안에서나 지금의 삶속에서 약속하신 모든 일들에 대해 인내하지 못해 회의를 갖고 스스로 무너지는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감히 견줄 수는 없어도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말씀을 읽다가 성경 한 귀절이 튀어올라 제 마음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베드로후서 1:10-11)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에서 멀어지고 낙망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들(때로는 우리가 기대했던 시간들)이 지연되어 실망했을 때입니다. 하지만 한번 돌아보십시오. 그 실망안에는 얼마나 나의 생각들과 나의 욕망으로 가득차 있었던지...   혹시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고 계신가에 대한 영적 헤아림은 부족했던 것은 아닌가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두 번이나 완곡하게 믿지 않고 거절했던 것이 그것이며 세례 요한이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릴까요?"라고 여쭤본  것이 바로 영적 조급증에 의한 헤아림의 부족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영적 헤아림의 부족이나 조급증을 어떻게 해결할까요? 바로 오늘 말씀이 그것입니다. 첫째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택하신 그 이유에 걸맞게 행해야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행함의 원칙이 기준이 내 욕망이나 내 육신의 바람이어서는 안 됨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의 목적지가 이땅이 아니며 우리는 이 땅의 시민권자가 아닌 하늘의 시민권자임을 분명히 영혼에 새겨서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의 백성임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함께 갑시다. 내 아버지 집!"* 오늘의 묵상할 말씀; 창세기 24장, 마태복음 23장, 느헤미야 13장, 사도행전 23장* 오늘의 중심말씀 : 벧후 1:10-11 * 오늘의 찬송 :359장(통 40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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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23
  • "주님과 함께" 스물두 번째 날 (20210122)
    "주님과 함께" 스물두 번째 날 - 샬롬! 주님의 평강을 빌며 문안합니다. 오늘 새벽에 일어나 말씀을 보고 기도한 후 뉴스를 일별해보니 오늘 코로나 확진자수가  300명 초중반이 된다고 해서 감사한 마음으로 설거지를 하고 있었습니다.   싱크대 안에 구입한지 한 삼십년도 더 된 부부 커피잔이 있었습니다. 씻다가 보니 그중 하나가 굽이 깨진 것을 다시 붙인 흔적이 있습니다. 순간 아내의 삶이 생각났습니다. 그 커피잔을 우리는 얼마나 애지중지하며 사용했는지 모릅니다. 비록 깨졌어도... 살 당시에 우리는 상당한 금액을 지불했습니다. 금액보다는 우리  부부에게는 세월의 더께에 더 마음이 가기 때문입니다. 내 아내의 마음은 얼마나 많이 갈라져서 봉합을 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파왔습니다. 새롭고 현란한 빛을 뽑내야만 아름다울까요? 먼저는 거기에 있기에 아름답습니다. 있기에 아름다운 겁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모든 것이 아름다워서만 보기에 좋다고 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존재할 이유와 존재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그것이 조금 못나고 금이 가고 깨져서 다시 붙였어도 존재만으로도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존재하게 하셨기에..., 오늘 우리 주변을 한 번 돌아보십시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눈으로 이웃에게 눈을 돌려보세요. 우리나라가 3050클럽에 가입한지 사년차입니다. 삼만 달러의 소득에 오천만명의 인구를 가진 나라를 국제기구에서 진정한 선진국이라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우리는 평균 한 집당 4인 가구로 따졌을 때 월 천만원의 수입이 있어야 평균입니다. 그런데 아마도 이 나라 국민 중 70%는 해당이 안 될 겁니다. 해서 박탈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가끔은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콩 한 쪽도 나누어 먹는 민족입니다. 그 공동체 의식이 코로나를 잘 이겨나가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없을 때도 배가 고플 때도 남을 생각해서 한 숟가락을 덜 먹고 그것을 나눈 민족입니다.   이제 더욱 영의 눈을 크게 뜨고 세계를 바라봐야 합니다. 지금도 배고픔에 잠 못 이루는 내 아이들, 그 아이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내 아이들입니다. 왜냐구요?   하루는 마리아가 예수님께 나와 옥합을 깨뜨리고 삼백 데나리온(지금의 약 삼천만원 상당, 이 여인이 일년은 먹지도 못 하고 쓰지도 않아야 모을 수 있는 돈)의 향유를 쏟아 예수님 발에 붓고 머리카락으로 발을 씻어 드릴 때 옆에 있는 제자들이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 제자들을 말리시며 "가난한 자는 너희와 항상 있을 것이나 이 여인은 네 장례를 예비하는 것이니 그대로 두라."(요한 12:7-8)고 하셨습니다. 굽이 깨진 것도 다시 보면 아니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아름답습니다. 이제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도. 그분의 축복도 나를 위해서가 아닌 하나님께서 만드신, 지금도 힘들어 하고 고통스러워할 사람들을 위한 것임을 알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빛의 사명(마태 5:14)을 우리는 다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빛깔이 없고 굽이 좀 깨졌어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기에 그 사람은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오늘의 묵상할 말씀; 창세기 23장, 마태복음 23장, 느헤미야 12장, 사도행전 22장* 오늘의 중심말씀 : 마태 5:14-16* 오늘의 찬송 : 436장(통 49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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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23
  • "주님과 함께" 스물한 번째 날 (20210121)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 아침에 영혼의 기지개를 켜고 주님께서 가리키시는 곳을 바라봅니다.샬롬!  평강의 주님안에서 여러분들에게 아침인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제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메세지를 보내도 되는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나는 과연 이 메세지를 보낼 자격이 있는가?'하는 것보다 '내가 보내는 이 메세지가 얕은 지식을 콘텐츠(내용물)를 저렴한 포장을 해서 전자택배로 보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스스로의 괴롭힘입니다.   물론 이런 괴로움이 자기 성찰이 되고 그로인해 저도 더욱 명적으로 깊어지고 제가 보내 드리는 이 메세지도 더 성숙하고 풍성한 영적 영영분을 담게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지난 삼 주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또 나는 과연 주님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보며 자신을 채찍질 해봅니다. 해서 간절히 기도부탁드립니다.   어쩌면 제가 보내드리는 이 메세지가 여러분들의 영적 유익이 아니라 저의 이 간절한 영적 몸부림을 여러분들에게 보이며 저를 위한 기도를 바라는 강한 메서지일 수 도 있습니다. 정말 부탁드립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요.  하나님께서는 꿈을 먼저 보여주시고 일을 하도록 재촉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요엘서 2장 28에서 우리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이 요엘서의 말씀은 우리에게 성령님의 임재하심이 왜 필요하고 성령님의 임재하심이 우리에게 왜 그토록 중요하지에 대한 답이 명쾌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단순히 '장래 일, 꿈, 이상'이라는 단에 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창세기 28장 10절 이하에 기록된 '야곱이 벧엘에서 꾼 꿈"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야급이 어떤 상황, 어떤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께 꿈을 받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야곱의 마음의 상태를 보십시다.  아마도 '절박감. 쫒기는 자의 조급증, 불안과 초조'등이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안전이나 평화를 보증하시지 않고 먼 미래의 꿈을 보에주시고 계십니다. 쫓겨가는 그에게 땅에 대하여, 또장차 이룰 큰 민족에 대하여 약속하심은 웬 말입니까?   바로 여기에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져야할 자세에 대한 소중한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습니다. 오늘도 힘든 일이 많고, 또 힘들 일이 많으시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떤 이 세상에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직적 해결책이나 이 모든 것을 일거에 해결할 어떤 신박한 보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 하나님께서 가리키시는 것을 보라고 하십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의 장래 일이고, 꿈이고 이상인 것입니다. 믿음은 긴 호흡이 필요합니다. 그 긴 호흡은 바로 주님의 길을 가는데, 그분이 가리키시는 곳으로 가서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계획하신 일에 동참하는데 필수적 요소입니다. 서두르지마시고 한발짝, 한발짝 주님께서 가리키시는 곳으로 가십시오. 그렇게 가다보면 거기에서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가리키신 장래 일을 보게 될 것이고, 주님께서 보여주신 꿈이 현실이 되어 나와 내 앞에 펼쳐질 것이며, 어느덧 우리는 이루어져 있는 비전을 보게 될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할렐루야!* 오늘의 묵상할 말씀; 창세기 22장, 마태복음 21장, 느헤미야 11장, 사도행전 21장* 오늘의 중심말씀 : 창 28:10-27* 오늘의 찬송 : 390장(통 44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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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우형목사
    2021-01-21
  • "주님과 함께" 열아홉 번째 날 (20210119)
    "주님과 함께" 열아홉 번째 날 -   주님의 평강과 생명의 은혜가 여러분들과 여러분들의 가정위에 영원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해볼 주제는  '느헤미야의 기도를 통해서 본 삶과 기도의 자세'입니다. 우리가 지금 읽고있는 성경말씀중에 느헤미야서가 있어서 쉽게 이해가 될 겁니다. 느헤미야서 1장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들은 느헤미야가 슬퍼하며 눈물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기도는 예루살렘이 침략자인 신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무너지고 성전이 더럽혀진지 약 130년이 지났을 때의 기도입니다. 그런 기억조차도 희미해져갈 그런 때 느헤미야는 황폐져가는 예루살렘 성전의 소식을 들은 겁니다.   그는 당시의 최고 권력자인 아닥사스다왕의 술관원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술관원은 대단한 지위요, 왕의 신임을 얻지 못하면 절대로 오르지 못할 자리였습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정확한 기술은 없지만 느헤미야는 당시 이집트를 점령하고 다스리는 일에 골머리를 앓았고 이에 페르시아와 이집트  사이에 있는 유대인들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느헤미야를 총독으로 보냈다는 해석이 가장 유력합니다. 아무튼 총독으로 가기전, 느헤미야는 눈물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었고 이 기도가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아닥사스다왕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그리고 에스라와 함께 성전 재건을 하게 됩니다, 물론 시작은 에스라가 먼저 했습니다.    느헤미야의 기도를 보면 아주 중요한 특징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하나님에 대한 그의 마음입니다. 유대가 멸망하고 예루살렘 성전이 더럽혀진 지도 130년이상 지났습니다. 하지만 느헤미야의 믿음의 열정과 하나님을 향한 그의 마음은 조금도 퇴색되지 않아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는 아주 경건하고 자신과 자신의 민족의 죄악을 깊이 깨닫고 회개했습니다. 기도는 경건하고 늘 하나님과의 만남은 늘 정결한 상태여야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정결은 과거의 죄와 잘못된 믿음과 삶의 방향에서 돌이킬 때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입니다.   느헤미야에게 주신 응답은 그후에 일어났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아주 중요한 기도의 자세와 삶의 자세를 느헤미야로부터 배울 것이 있는데 그것은 그가 절망과 좌절과 과거의 아픔, 문제들로 인한 부정적 렌즈를 끼고 기도드리지 않았다는 겁니다. 오히려 느헤미야는 과거의 고통을 딛고 미래를 향한 하나님의 회복의 은총을 바라보는 희망의 렌즈를 끼고 기도했습니다.   오늘 여러 지체들은 어떤 믿음의 자세로, 또 어떤 기도의 렌즈를 끼고 기도드리고 있습니까? 한 번 스스로를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 오늘의 묵상할 말씀; 창세기 20장, 마태복음 19장, 느헤미야 9장, 사도행전 193장* 오늘의 중심말씀 : 역대하 7:11-18* 오늘의 찬송 : 286장(통 218장)* 공동기도제목 ;1. 주여! 주님의 교회와 백성들을 순결하고 거룩하게 하소서2. 주여, 이 나라가 하나님의 공의로 다스려지게 하사 정의롭고 공평하며 하나되게 하소서3. 우리 공동체를 주님의 권능으로 강하게 하셔서 생명이 넘치게 하시고 사명을 감당케 하소서4. 공동체 지체들이 주님의 백성들이 믿음위에 견고히 서게 하시고 꿈을 잃지 말게 하시며 올해 비전 실현의   첫해가 되게 하소서.5. 우리로 서로를 세워주고 서로를 기도해주는 참 공동체를 이루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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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19
  • "주님과 함께" 열여덟 번째 날 (20210118)
    우리 하늘의 아버지, 전능하신 여호와, 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 놀라우신 지혜와 권능을 찬양합니다.샬롬! 주님의 평강의 은혜가 늘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오늘은 예수님의 세미한 감성과 살피심을 통해 우리의 무딘 감정과 타인을 항한 무관심, 그리고 일방적인 정죄의 오만함을 회개코자 합니다.어제 다 읽으셨는 줄 압니다. 마태복음 17장 24절에서 27절에 예수님께서 아마도 가버나움의 회당에 들어가신 것같습니다. 들어가실 때 성전세를 받는 자들이 예수님께서 성전세를 내시지 않다고 비난을 했습니다. 본문에서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예수님은 성전세를 내실 이유가 없습니다. 오늘날은 대통령도 시민이기에 세금낼 의무를 반드시 이행해야하지만 예수님 당시의 왕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왕은 세금을 받는 자입니다. 해서 그 자녀들도 세금에는 자유롭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하나님이심을 모르는 자들이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하나님께서 생명의 속전으로 정하신(출애굽기 30:11-16) 성전세를 내지 않으신 예수님을 비난하는 것이 정황상 타당합니다. 예수님은 저들에게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인데 너희들이 어찌 내게 성전세를 거두려하느냐"고 야단치실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시지 않고 오히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고 우리 주님이 얼마나 섬세하신지, 얼마나 배려가 많으신지, 더 나아가 때를 잘 분별하시며 얼마나 인내가 많으신지 저는 깊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 믿음 속에  이런 섬세함, 이런 배려, 이렇게 때를 헤아림, 그리고 인내가 있어야한다는 것을 저는 깨달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면 그 순종으로 내 삶에 들어온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모든 조급증과 나의 섣부른 판단과  나의 배려없는 무례함에서 나를 자유케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놀랍고 그 앞에서 이 부족한 종은 얼마나 작은지...♡ 오늘 대설 주의보가 발령됐습니다. 주님께서 동행하시고 평안케 하시는 은총으로 복된 날 보내시기를 기도드립니다. 할렐루야!* 오늘의 묵상할 말씀;창세기 19장, 마태복음 18장, 느헤미야 8장, 사도행전 18장* 오늘의 중심말씀 : 마태복음 5:1-12- 낮아지고 공감하며 겸손하고 정결한 자를 기뻐하시는 주님이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만나뵈러 가십시다.)* 오늘의 찬송 : 463장(통 518장)* 공동기도제목 ;1. 주여! 주님의 교회와 백성들을 순결하고 거룩하게 하소서2. 주여, 이 나라가 하나님의 공의로 다스려지게 하사 정의롭고 공평하며 하나되게 하소서3. 우리 공동체를 주님의 권능으로 강하게 하셔서 생명이 넘치게 하시고 사명을 감당케 하소서4. 공동체 지체들이 주님의 백성들이 믿음위에 견고히 서게 하시고 꿈을 잃지 말게 하시며 올해 비전 실현의 첫해가 되게 하소서.5. 우리로 서로를 세워주고 서로를 기도해주는 참 공동체를 이루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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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우형목사
    2021-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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