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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년 크리스천들 61.3% 혼전 순결 지킬 필요없다"
    차세대바로세우기학부모 연합 대표 김지연 약사 ©CTS 유투브 캡쳐   20일자 CTS 방송에서 차세대바로세우기학부모연합 대표 김지연 약사 ‘혼전순결, 성은 부부간에만 공유하는 것입니다’라는 주제를 말했다. 그는 “요즘 연인 끼리 성관계를 당연시 한다”며 “남에게 피해주는 것도 아니고 문제될 것 없으니, 갈 때 까지 가자고한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성경적으로 성관계는 부부간에만 허락 된다”며 “사귀고 있는 연인끼리의 성관계는 성경적으로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히브리서 13장 4절을 빌렸다. 다음과 같다.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이처럼 그는 “청년 크리스천들은 말씀을 기억하며, 혼전순결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한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그는 한국교회탐구센터 조사 결과를 빌려 “크리스천 청년 1000명 이상 중 61.3%는 지킬 필요 없다고 말했다”며 “큰 충격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육체적 성행위를 감정이 이끌리는 대상과 하는 것이 마치 성적 자기결정권인양 미화시키는 세상 속에서 크리스천들은 살고 있다”고 했다. 때문에 그는 “우리 크리스천들은 성경적 가치관을 지켜야한다”고 당부했다.        
    • 교계뉴스
    • 문화
    2019-08-27
  • (이창엽 선교사칼럼)왕이신 예수
                                                          왕이신 예수      한 나라의 문화 척도는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전통을 간직한 고유의 건축물로 가름할 수 있으며 이는 건축기술로써 문화유산이고 자산이다. 현재까지 보존되고 전해오는 문화유산으로 건축물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중 종교건축의 비중이 크다. 종교건축은 고대에서 현대까지 동·서양 인류문화유산의 대표적인 산물로써 당대의 걸출한 건축가들과 장인들이 건축과 예술의 언어로 시대정신을 투영하였다. 물리적인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축에서의 표현하려는 예술성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유사하다. 아쉬운 것은 당시에 동양에서 왕이 예수이다는 것을 널리 전해지지 않았음이다.             Ukraine Frescoes 천장의 왕이신 예수 vs 근정전보개천장의 황룡 (오행의 다른 표현 단청)    단청은 오행설에 근거하보통 삼원색의 바탕 위에 흑과 백을 더한 오방색을 사용하는데 전해 내려온 규칙과 방법에 따라 문양을 그려 넣는다. 일반 여염집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고, 왕이 거처하는 궁궐이나 부처님을 모신 사찰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된 강렬한 의장 요소이다. 건물 뒤에서 앞을 바라볼 때 동쪽은 좌청룡이라 청색이고, 서쪽은 우백호라 백색이다. 남쪽에는 붉은 태양의 힘을 등에 업은 주작이 하늘을 훨훨 날아 적색으로 칠하고, 북쪽은 춥고 어두운 방위라 믿어 현무라 흑색으로 자리 잡고, 중앙은 모든 생명의 근원인 흙의 색깔 황색을 배치한다. 그 결과 가장 중심에 앉아있는 왕을 황제(皇帝, 黃帝)라 하고, 동서남북 사방에 흩어져 있는 제후국의 왕은 각각 그가 위치하는 방위에 따라 청제, 백제, 적제, 흑제라고 불렀다.   경복궁 근정전 보개천장의 황룡 Ukraine Frescoes 천장의 왕이신 예수  * 근정전의 왕을 상징하는 황룡 배치와 교회의 머리이고 왕인 예수의 배치가 같다. (TIP) 교회의 머리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앱 1:22)(대한성서공회,2019)    
    • 오피니언
    • 이창엽선교사
    2019-08-14
  • 사랑은 무엇일까?
      배경락 목사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국어사전을 살펴보니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전 아이들이 자랄 때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먼 훗날 아빠를 기억할 때, 함께 했던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는 것이 삶의 자양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매주 토요일이면 광화문 교보에 가서 책을 구경하고 피맛골 먹자골목에서 삼치를 먹었습니다. 한달에 한 번은 여행을 떠나 추억을 쌓았습니다. 아이들이 다 크고 나니까 여행 갔던 것보다 정기적으로 들리던 서점과 삼치를 더 기억하더군요. 저는 아이들을 위하여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낌없이 다 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성경은 사랑을 정의할 때 제일 먼저 ‘오래 참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랑과 오래 참음이 연결되나요? 오래 참는다는 말은 상대방이 부족하고 불완전하고 연약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그 모든 연약함을 품어 안는다는 뜻이지요. 솔직히 전 이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나는 상대방에게 최선을 다하는데 상대방은 자꾸만 잘못을 저지릅니다. 나는 상대방에게 사랑을 퍼붓는데 상대방은 나를 공격합니다. 나는 상대방에게 친절을 베푸는데 상대방은 나를 외면합니다. 나는 상대방에게 오래 참는데 상대방은 걸핏하면 화를 냅니다. 나는 상대방에게 은혜를 베푸는데 상대방은 너무나 냉정하게 계산적으로 대합니다. 이런 일은 누구나 한번쯤 경험하는 일입니다. 이럴 때 사랑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실 전 이런 사랑을 하는 데 별로 익숙하지 않습니다. 베풀면 받고 싶은 것이 솔직한 저의 심정입니다. 그래도 억지로 이해하려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라도 오래 참고 인내하는 모습은 정말 숭고한 사랑이니까요. 그런데 이런 경우는 어떻습니까? 아버지는 엄청난 부자인데 해외 유학간 자녀가 돈이 없어서 아르바이트하면서 궁색하게 삽니다. 자녀에게 돈을 주어야 하는데 참는 부모는 정말 대단한 부모입니다. 쉽게 얻은 돈은 인생의 교훈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런 경우는 어떻습니까? 자녀가 큰 병으로 고통을 받는데, 부모가 그걸 보고만 있는 거에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병원에 데려갈 능력은 충분합니다. 당장이라도 고쳐줄 수 있는데 안 데려가는 거에요. 이걸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마 누구도 이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이런 상황에도 참는 것을 봅니다. 하나뿐인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간절히 호소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십자가 상에서 “아버지여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고통 가운데 신음하는데 하나님 아버지는 꾹 참고 외면하셨습니다. 이게 사랑입니까? 저는 여기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오래 참음이 매우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음을 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과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이 감히 측량할 수 없을 만큼 넓고 크고 높고 깊습니다. 하나님이 정의하시는 사랑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고통을 느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처럼 통증을 느끼는 감각기관이 없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당하는 아픔과 고통과 설움과 눈물과 억울함을 느끼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인간들아 행복하여라” 말씀하셔도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로만 우리를 사랑한다 하지 않으시고, 우리 가운데 오셔서 사셨습니다. 수치, 모욕, 침묵, 외면, 버림받음, 약함 등 모든 안 좋은 것을 다 경험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모든 것을 참고 견디셨습니다. 예수님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받는 모든 고통을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다 보고 계셨지만, 끝내 참으셨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그 모든 참음은 사랑 때문입니다.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낌없이 전부 다 주셨는데, 물과 피와 고통과 눈물을 다 쏟으셨는데 인간은 극악무도하여 주님께 정말 못할 짓을 했습니다. 죄의 권세 아래 있던 인간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짓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영이나 되는 천사를 불러 처리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죄를 그냥 허용하셨습니다. 온 몸으로 인간이 던지는 모든 악함과 더러움과 치사함과 배신과 모욕과 험담과 욕설과 찌름과 상처와 고통을 온 몸으로 받으셨습니다. 사랑으로 그 모든 것을 받으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최악을 최선으로 바꾸셨습니다. 저주를 은혜로 바꾸셨습니다. 사망을 생명으로 바꾸셨습니다. 못을 박고 창으로 찌르고 협박하고 공포를 조성해도 주님은 조금도 흔들림 없이 저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것이 십자가 상의 주님 모습입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부활 후에도 주님은 온몸의 상처난 흔적을 하나도 지우지 않으셨습니다. 허리에 창 자국, 손에 난 못 자국 그대로 가지고 부활하셨습니다. 마음만 먹으셨다면 완벽하고 깨끗하고 온전한 육체로 부활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일부러 상처를 간직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몸으로 승천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늘에서도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했던 고통을 기억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아픔, 우리의 설움을 기억하겠다는 뜻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좋을 때만 함께하는 것이 아닙니다. 괴로울 때 힘들 때 아플 때, 눈물 날 때 함께 하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모든 환란에 동참”하였다.(사63:9)   십자가의 사랑은 모든 고통과 환난 가운데서도 오래 참음의 사랑입니다. 고통이 좋아서 참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 때문입니다. 사랑 때문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53:5). 하나님의 사랑은 오래 참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제자들에게,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우리에게 각자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마시던 잔을 마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에 채우노라 고백하였습니다(골1:24). 초대교회의 가장 큰 힘은 타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끝까지 참고 그리스도께서 지셨던 십자가를 지며 생명까지 주면서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그렇게 오래 참음의 사랑을 보여주므로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10). 그것이 바로 기독교의 힘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초대교회가 가졌던 이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19-08-13
  • 종교는 목적인가, 수단인가?
      약화되는 한국인의 종교성  ▲정재영 교수 이번에 한국종합사회조사(KGSS, 2003-2018) 결과가 발표되었다. 한국종합사회조사는 미국의 시카고대학교 NORC(NORC at the University of Chicago)에서 1972년 최초로 창안되어 지난 45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파급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미국의 종합사회조사(General Social Survey, GSS)의 한국판 조사이다. 이러한 한국종합사회조사는 한국의 대표적 사회과학 학술자료로,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1,031명에 대하여 대면면접 방식으로 수행되었다. 요즘에는 조사의 편의를 위해 패널들을 통한 조사를 실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조사는 미리 구성된 패널이 아니라 전국 단위의 새로운 표본을 추출하여 면접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국적인 여론이나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매우 가치 있는 조사이다.이 조사에서는 2003년 이후에 1,600개가 넘는 문항들을 통해 국민들의 의식과 생활 실태를 파악하고 있다. 이 중에 종교에 대한 질문이 많지 않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조사 결과를 통해 한국인의 종교성의 한 단면을 살펴볼 수 있다. 올해 조사 내용은 주로 종교의 의미와 관련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종교 비율이 개신교가 19.7%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불교 18.9%, 천주교 12.2% 순이었다. 개신교 비율은 지난 2015년 인구센서스 결과와 같았고, 불교와 천주교는 인구센서스보다 약간 높게 나왔다. 인구센서스에서는 조사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개신교가 신자 수가 가장 많은 1위 종교로 나타났는데, 이번 조사에서도 개신교 신자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종교 인구가 51.6%로 인구센서스보다 약간 높게 나왔지만 절반에 가까운 인구가 종교가 없다고 응답하였다. 전세계적으로 종교인구가 80%가 넘는 것에 비하면 우리나라 종교 인구는 매우 적은 편이다.종교집회 참석 빈도는 “일주일에 여러 번 참석한다”는 응답이 6.9%로 2003년 조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낮게 나왔고, “일주일에 한번”(14.2%)을 포함해서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이 21.1%로 이 역시 조사 이래 가장 낮은 수치이다. 전체적으로 한국 종교인들의 집회 참석 빈도가 점점 줄고 있다는 조사 결과이다. 종교별로 통계가 나오지 않아서 그 차이를 알 수는 없지만,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에서 2017년에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개신교 신자들은 다른 종교에 비해 1주일간 종교 집회에 가장 많이(73.7%) 참석했으나 5년 전에 비해 참석률은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다음으로 “종교가 있다”는 것의 의미에 대하여 가장 많은 36.7%가 “종교 가르침이나 교리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응답하여 “신이나 영혼, 귀신의 존재를 믿는 것”(15.0%), “종교에서 강조하는 교리나 가르침에 대한 지식이 있는 것”(13.4%), 그리고 “종교 행사에 참여하는 것”(10.9%)보다 종교적 실천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한 지식이나 믿음 또는 종교 행사 참석보다도 믿는 바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이다.그러나 자신의 신앙심에 대해서는 10.1%만 강하다고 응답하였고, 25.0%는 별로 강하지 않다고 응답하여 대체로 낮게 평가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 종교의 가르침이 상충되는 일이 발생할 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따르겠다”는 응답이 25.6%였고, “종교의 가르침을 따르겠다”는 응답이 16.4%로 훨씬 적게 나왔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 종교를 중요하게 고려하는지에 대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8.1%와 “중요하다” 12.5%를 합하여 20.6%만 중요하다고 응답하였고, 중요하지 않다는 응답이 54.2%로 과반을 차지했다. 이러한 결과로 볼 때 종교에 자신의 삶을 복속시키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중심에 놓고 필요에 따라 종교를 활용하고자 하는 의식이 큰 것으로 해석된다.  실용적인 종교성 이번 조사에서는 한국 사람들이 평소에 얼마나 종교적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질문들을 추가하였는데, 먼저 “죽은 사람들의 영이 후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에 대해서는 15.3%만 그렇다고 응답하였고, 절반이 넘는 56.5%는 그렇지 않다고 응답하여 혼령의 영향에 대해서는 별로 믿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요가나 식이요법에 종교적인 요소가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도 13.3%만이 그렇다고 응답하였고, 56.6%는 그렇지 않다고 응답하여 이러한 활동이 종교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다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덕을 쌓으면 자손들이 복을 받는지에 대해서는 ”매우 그렇다“ 19.2%를 합하여 절반이 넘는 52.2%가 그렇다고 답하였고, 위급하거나 중대한 상황에서 기도를 해본 경험에 대해서도 52.3%가 그렇다고 응답하였다.우리나라 사람들은 유교적인 심성이 강하다고 알려져 있고, 2016년 조사에서 유교를 믿는다는 응답이 49.6%로 거의 절반에 육박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정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유교식 신앙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할 정도이다. 그리고 이번 조사에서 장례예식은 유교방식이라는 응답이 21.7%로 불교 방식이라는 응답과 함께 가장 많이 나왔다. 그러나 유교의 전통을 따르는 제사와 같은 조상 숭배 의식이 후손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매우 소수인 것으로 나타난 것으로 볼 때, 유교가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에서는 영향을 미치지만 조상신에 대한 믿음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요가를 인도 종교의 영향으로 본다든지 식이요법을 특정 종교의 가르침이나 종교적 수행으로 보는 시각도 별로 없어서 이것을 단순히 건강을 위한 행위나 노력으로 이해하고 있었다.그러나 본인인 선행을 하고 덕을 쌓으면 자손들이 복을 받는다는 것은 증명될 수 있는 사실이 아님에도 이것을 믿는 사람들이 과반수에 이른다고 하는 것은 과학적인 근거와 상관없이 덕을 쌓는 것은 좋은 일이고 이것이 후손들에게도 좋을 것이라고 하는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위급하거나 중대한 상황에서 기도해본 경험이 과반수에 이른다는 것도 응답자의 절반 정도가 비종교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비율이라고 할 수 있다. 경험이 없다고 응답한 사람이 29.3%인 것을 생각하면 한번이라도 기도를 한 사람은 70%에 이른다고 볼 수 있다.  성찰이 필요한 종교인 이러한 조사 결과를 통해서 볼 때, 현대 한국인들에게 종교적 심성이나 종교의 영향력은 점차 약해지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것은 사회가 발달하고 점차 다원화되면서 종교에 대한 관심이나 집중도가 감소하기 때문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럼에도 자손이 복을 받는 것에는 여전히 관심이 있고 위급하거나 중대한 일이 있을 때 기도를 한다는 것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서 종교를 개입시킨다는 의미로 종교를 수단시하는 성향으로 이해된다. 이미 오래 전부터 한국의 종교에 대해서 현세주의적 종교성이라든지 도구적 종교성이라는 표현이 있어왔는데 이것이 보다 더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종교적 요소나 종교의 가르침을 그 자체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는 곧 자기 자신을 절대화 하는 태도인데 그만큼 스스로 점검하고 반성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조차도 상대화할 수 있어야 하고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불완전한 인간에게 요구되는 겸손의 태도이다. 이는 기독교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문제이다.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성공이나 목적 달성을 위해 기독교 신앙을 수단시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신앙 태도를 점검하고 돌이켜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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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연재
    2019-08-12
  • "교회는 일본이 과거사를 반성하고, 한국인의 반일감정에서 미래적 화해를 독려해야 한다"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샬롬나비 상임대표·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창립원장)   샬롬 나비는 광복 74주년 논평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아베 정권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명백히 인정하라”며 “독일 메르켈 정부의 태도를 배워야한다”고 촉구했다. 그리고 이들은 “메르켈 정부는 과거 나치 행태로 주변 피해 국가에 대해 무한 사과의 태도를 보였다”고 밝혔다. 다만 이들은 “아베의 태도는 과거 군국주의에 대한 반성이 없는, 도리어 과거를 지향하고 있다”면서 “동북아 리더 국가로서, 주변 국가에 대한 반성의 태도는 필수”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들은 “동북아 평화를 위해서는 한·중·일이 협력해야한다”면서 “편협한 국가주의 헤게모니를 버려야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문재인 정부는 민생과 경제 파탄이 예상되는 한일 갈등을 자초하는 일을 버려야한다”면서 “이전 정권들의 패착을 돌아보고, 즉각 대화와 외교로서 풀어야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들은 “한일 갈등을 이용해서 장기정권을 획책하는 방편으로 삼는다면, 이 또한 국민과 역사의 엄중한 심판은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 경계했다. 끝으로 이들은 “한국교회는 일본이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는 사과를 독려하는 것”과 더불어 “한국인의 반일감정을 차분하게 하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 따라 미래 지향적 화해의 태도를 지향하도록 유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논평 전문이다. <샬롬나비, 2019년 광복 74주년 논평서> 일본 포용 정책으로 일본을 극복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 위에 선진화된 대한민국 건설하자.일본은 경제력에 걸맞게 과거사에 참회하는 정신 가져야 동북아의 지도국 위상 가질 수 있다.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이하는 즈음에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그 어느 때 보다도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인한 국내 정치의 파국은 이제는 남북뿐만 아니라 동아시아를 둘러싼 당사국 간의 국제적 갈등과 대립의 격랑에 휩싸이고 있다. 무도하게 이 땅을 유린한 일제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자유와 해방의 빛을 되찾은 광복절을 기뻐하며 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온 마음으로 되새기는 동시에 다시는 종의 굴레에 매이지 않도록 독립과 건국의 정신으로 재무장하고 민족적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가 광복절을 맞이하면서 일본 아베 정권의 식민지 통치의 불법성을 부인하는 정책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비판해야 하겠다. 일본 정부는 1993년 과거에 위안부 강제동원 인정과 사죄한 고노담화와 1995년 일본의 전쟁범죄 인정과 사죄와 식민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통해 자신들의 대한민국에 대한 불법지배를 사죄하였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2013년 4월 23일에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하면서도 그 담화에 들어있는 반성의 내용들을 실천하지 않고 있다.׮결과적으로 일본은 아베 정부가 들어선 후 자신들의 과거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면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일본 정부가 자신들의 과거의 잘못을 분명하게 인정하고 그러한 과거 청산 위에 발전적인 미래 관계 구축을 하도록 나가야 하겠다.이러한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가 요청되는 시기에 특히 백 년 전 독립운동의 선봉에 서서 자유대한의 터전을 구축한 한국교회는 우리 사회 내부의 개혁과 남북과 열강들의 대립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십자가의 사명과 시대적 책임을 끝까지 완수하여 선열들과 순교자의 피와 땀이 서린 광복의 기쁨을 삼천리 방방곡곡 자손만대에 전하여야 한다. 우리는 광복 74주년을 맞이하여 광복의 정신을 올바르게 계승하여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발전시키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하겠다. 뜻깊은 광복절을 맞이하여 샬롬나비는 우리의 입장을 밝히는 다음과 같은 논평문을 발표한다. 1. 일본은 한일합병과 침략전쟁의 불법성과 참혹한 결과를 진실되게 반성하라.일본은 일제강점기 군국주의를 앞세워 대동아공영이라는 거짓말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파괴하고 자행한 한일합병과 중국과 동남아시아 그리고 미국에 대한 침략전쟁의 불법성과 참혹한 결과를 통절히 반성하고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기여해야 한다. 일본 정부는 자신들의 강점과 무단통치에 의해 희생된 꽃다운 청춘들의 희생과 죽음을 상기하지 못하고 이들의 고통과 슬픔을 망각하여 또다시 이전 역사의 전철을 되풀이 한다면 지구상에서 따돌림과 심판을 자초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일본 정부는 자신들의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분명하게 인정하고 책임있는 사과를 해야 한다. 특히 무엇보다 아베 내각이 한일합병과 침략전쟁으로 희생되고 유린된 인권은 결코 물질만으로 보상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모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2. 일본은 독일을 유럽의 지도국가로 서게한 독일 지도자의 무한한 사죄 태도를 배워야 한다.분단 독일이 통일 되도록 한 것은 브란트 독일 수상이 1970년 폴란트 방문시 1943년 1944년 두 차례 나치에 저항한 게토 지역 유대인들 봉기에서 학살당한 희생자 묘역에서 무릎을 끓고 사죄를 구한 태도에서 비롯되었고, 통일 독일이 유럽연합의 지도국 위상에 선 것은 마르켈 총리가 말하는 무한한 사죄의 태도이다. 이에 반해 오늘날 아베의 오만한 태도는 과거의 군국주의 태도에서 반성이 없고 오히려 과거를 지향하고 있다. 일본이 동북아 국가 사이에서 경제동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지난 8월 6일 매슈 굿맨 선임 부회장이 펴낸 한·일 갈등 관련 보고서에서 "일본은 이웃 나라에 대한 공격으로 '경제적 리더' 이미지를 더럽힐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한·일은 중국의 역내 강압 및 국제적 규범 침해 행위에 맞서 협력하는 데 있어 공동의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고 있다"며 한·일 갈등이 안보 협력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일본 정부 지도자들은 이러한 지적을 진지하게 경청해야 한다. 3. 정부는 일본을 자극하는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고 기업이 대응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과거사 문제로 일본의 경제 보복이 오는 것에 대하여 한국 기업은 경제의 실력으로 대응하고 정치인들은 외교력으로 풀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기업인들을 불러내어 “임진왜란 때 일본이 탐낸 것도 우리 陶工의 기술력”이라고 정부와 기업이 공동대응을 모색하는 것은 자료를 구입, 생산하고 상품을 파는 기업에 실제로 이로운 지를 깊이 성찰해야 한다.일본은 어디까지나 자유우방으로 그동안 70여 년 간 한국경제발전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이웃나라다. 정부는 중소기업이 일본의 수출 금지 제품을 국산화할 수 있도록 기업 52시간 근로 시간 규제 등 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를 풀어주어야 할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부품을 일본에 의존했던 산업생태계를 바꿀 기회라고 하지만 말고 우리 중소기업이 이러한 어려운 시기에 글로벌 분업구조에서 비교우위의 부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업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2020 도쿄 올림픽 보이콧, 일본 여행 금지 등 민간 교류를 정치외교문제로 금지해선 안 된다. 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는 일본 제품불매운동이나 일본 여행 보이콧은 마이너스 될지언정 플러스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을 정부는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미국 싱크 탱크는 8월 6일 보고서는 한국에 대해서 "문재인 대통령이 돈키호테식(quixotic)으로 일본과 경쟁하기 위해 남북 간 평화경제를 주장한 것은 일본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4. 오늘날 편협한 국가주의가 팽배되는 때 동북아 국가들은 헤게모니 경쟁을 자제해야 한다.오늘날 세계 지도자들은 독일 총리 메르켈이 지난해 11월 11일 파리에서 열린 1차세계대전 종전 1백주년 기념식에서 독일의 과거사를 반성하면서 언급한 인류의 평화와 화합 의미를 새겨야한다. 메르켈은 파리 평화포럼에서 “편협한 국가주의자들의 관점이 힘을 얻을 수 있는 우려가 있다”면서 “1차세계대전은 고립주의가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면서 사죄의 마음을 표현했다. 오늘날 이러한 편협한 국가주의는 일본의 우경화와 한국에 대한 경제적 압력으로 과거사 회피, 중국의 일대일로의 중화 제국주의적 팽창, 미국의 자국우선주의, 러시아의 군사우월주의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가운데 한반도는 북한의 핵개발과 선군주의, 한국의 북한 달래기 좌파 포퓰리즘,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 일본에 대한 반일주의가 팽배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러한 시대에 북한, 일본, 중국, 러시아와 더불어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소통과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만들어 가야 한다. 5. 우리는 대한독립의 정신을 고취하여 국난을 극복하고 시대적 과업을 완수해야 한다.우리는 사리사욕과 당리당략에 급급하여 사분오열되고 급기야 망국의 길로 내달았던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고 대한독립의 정신으로 단합하여 자유통일의 시대적 과업을 완수해야 한다. 자립자강(自立自彊)이 없이는 가정도 기업도 사회도 바로 설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사회 각계각층 모두가 마땅히 안보와 경제와 민생의 거국적 대의를 위해 신명을 다하여 본분과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 간도와 하와이와 각지에서 기꺼이 생명과 청춘과 재산을 오로지 독립을 위해 던졌던 우국지사들의 독립정신을 되살리는 것이 국난극복의 관건일 것이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북간도에서 밝은 세상을 꿈꾸며 항산항심(恒産恒心)을 소리 높여 외쳤던 선열들의 기개를 일으켜야 한다. 외국에서의 무장독립투쟁의 정신을 이어받는 것과 동시에 국내에서 일제의 핍박을 견뎌내며 학교를 세워서 인재를 양성하고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한 문화운동을 통한 독립운동의 소중함도 기억해야 하겠다. 국내에서의 이러한 실력양성운동이 있었기에 해방 후의 국가건설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광복절을 맞이하면서 해외의 무장독립정신과 함께 국내의 실력양성의 애국운동을 함께 기억하고 계승해야 하겠다. 6. 우리는 자유와 민주의 기치를 들고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는 새로운 자유대한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우리는 역사의 소용돌이와 도전 앞에서 응전하면서 반만년의 역사를 이어 왔다. 이제는 부정과 부패, 음란과 우상을 단절하고 분열과 분단을 종식하여 자유와 민주의 가치를 입증하는 “새 대한민국”(New Korea)의 비전을 실현해야 한다.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파괴하고 정의의 이름으로 정의를 파괴하는 동성애 퀴어 운동의 무책임한 거짓 인권과 이를 뒷받침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비윤리적이고 무법한 헌정 유린을 척결하고, 독립열사들이 마지막까지 생명을 던져서 일깨운 것처럼 무법한 침탈로부터 자력자강(自力自强)을 실현하는 자유와 번영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다음 세대에게 자유를 위한 책임과 역량, 민주를 위한 정직과 윤리를 전수하여 자유대한을 계승할 믿음과 의의 세대를 세워야 한다.우리는 이제 해방 이후에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바탕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대한민국의 저력을 바탕으로 남북한의 평화통일을 이룩하고 동북아와 세계평화의 달성에 기여하는 선진국의 대열로 도약해야 하겠다. 이를 위해서 국민들이 자유민주주의 체계의 소중함을 깊이 인식하면서 "케이 팝"(K-Pop)으로 대표되는 우리의 문화적인 창조능력을 신장시켜 세계인의 삶을 풍요롭게 발전시켜 나가야 하겠다. 7. 우리는 정의와 공법을 세우고 대동단결하여 경제 번영과 문화 융성을 이루어야 한다.우리는 수많은 외세의 침략에 맞서서 나라 사랑의 애국 정신으로 대동단결하여 국난을 극복하고 올바른 윤리도덕을 바탕으로 번영과 융성의 전기로 삼았다. 그러나 최근 반신적이고 비윤리적 동성애 인권화가 혐오와 차별이라는 거짓 인권논리로 둔갑하여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고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사회의 근본적인 성윤리도덕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 문재인 행정부는 시민들과 한국교회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가인권위원회, 여가부, 법무부 국가인권기본계획(NAP) 등으로 동성애 젠더정책에 국민의 혈세를 퍼붓고 있다. 천부적 인권을 천명한 독립정신(獨立精神)을 다시 일으켜서 극단적 이기주의에 편승하는 무법하고 무책임한 동성애 거짓인권의 법과 조례를 개폐하고 윤리입법을 구축하여 사회를 통합하고 국력을 결집하는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우리는 광복절을 맞이하여 국가를 올바르게 발전시킬 수 있는 국민의 건전한 윤리덕목을 발전시켜야 한다. 한국사회의 지나친 분열과 대립을 극복하기 위하여 서로를 배려하고 상생하는 정치 문화를 형성해야 하겠다. 한국사회의 불신으로 인한 사회적인 폐단을 극복하기 위하여 신뢰사회를 구현해 나가야 하겠다. 이를 위해 부정부패를 극복하고 정의와 공의가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고 상호협력하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하겠다. 더 나아가 문재인 행정부는 민생과 경제 파탄이 예상되는 한일갈등을 자초하지 말고 이전 정권들의 패착을 겸허하게 돌아보고 즉각 대화와 외교로서 풀어야 한다. 한일갈등을 이용해서 이를 장기정권을 획책하는 방편으로 삼는다면 국민과 역사의 엄중한 심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8. 한국교회는 광복절을 맞이하여 한일 간의 진정한 화해를 바탕으로 평화적인 미래관계 형성을 위해 기도해야 하겠다.광복절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면서도 식민지배의 압제자였던 일본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일본이 자신들의 잘못된 과거를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들은 일본과의 발전적인 국제관계를 발전시키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의 세 가지 소재의 수출금지 조치 및 수출우대국 지위 폐기 조치가 내려지면서 온 국민들의 반일 열기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위중한 시기를 맞이하여 일본이 진정한 반성을 하고, 한국 국민들도 일본과의 진정한 화해를 추구하면서 양국이 불행한 과거를 올바르게 청산하고 발전적인 미래관계 수립을 위해 기도하고 실천적으로 노력해야 하겠다. 한국사회에서 지금 민족주의는 자칫하면 감정적 배타주의를 흘러갈 위험을 안고 있다. 한국교회 성도들은 이러한 어려운 시기에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일본의 참다운 반성 위에서 양국의 평화적인 국제관계가 발전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하겠다. 9. 한국교회는 북한인권의 조속한 개선과 자유와 복음의 통일을 위해서 합심해서 기도해야 한다.한국교회는 선진들의 기도와 선열들의 희생을 통해서 쟁취한 자유와 해방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기쁨과 감사를 널리 전파하고 전승해야 한다. 우리는 북핵과 공산주의 독재로 폐쇄된 북한 동포들의 인권이 개선되고 자유통일의 전기(轉機)를 확보하도록 민족적인 결의를 모아야 한다. 특히 현대판 아우슈비츠인 북한의 대규모 정치범 강제수용소들에 갇혀 신음하고 절규하는 북한 주민과 북한교회 성도들의 조속한 자유와 해방을 위해서 합심하여 기도하고 이를 위해 거국적으로 국제적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 매년 유엔은 북한인권의 개선을 위해서 결의하고 있는 마당에 당리당략에 급급하여 침묵하고 있다면 한국정부와 한국교회는 역사적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광복절을 맞아 삼천리 방방곡곡에 무궁화가 피어나듯이 자유 평화 통일의 감격이 한반도 전역에서 울려 퍼지는 그날을 고대하며 소망한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19-08-12
  • 구원은 개인별이지만 민족이나 국가 단위이기도 하다
    ▲김병구 장로(바른구원관선교회)   우리는 구원은 개인별로 이루어 지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구원은 민족이나 국가 단위이기도 하다. 우선 구약은 하나님께서 택하시어 하나님 나라로 만들려고 하셨던 유대나라를 국가단위로 축복하고 징계하고 다시 구원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이다. 다시 말하면 구약은 유대나라 유대민족 단위의 구원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뜻과 역사하심을 기록한 복음이다.   신약은 구약에 비하여 훨씬 개인 구원에 치중한 복음이다.신약을 통전적으로 묵상하면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심령이 가난해진 개인이 십자가 고난으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되어 칭의 구원을 얻고 성령으로 거듭나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의 삶을 사는 가운데 참 평안을 누리며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담당하여 하나님 뜻을 이루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데에 헌신 봉사하고 사후에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된다는 기쁜 구원의 소식이다. 그러나 한 개인이 바울 사도처럼 두렵고 떨림으로 자신을 처서 말씀에 복종시키는 성화의 과정을 이루어 간다고 하더라도, 그가 속한 국가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김일성 태양신과 같은 우상을 섬기는 국가에 점령 당하게 된다면 그 개인의 구원의 과정이 영생에 이룰 수 없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가 그 끔찍한 박해나 순교를 감당해 갈만큼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를 지속해 가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기독교 신자라는 이유만으로 강제 수용소에 갇혀 있으면서도 신앙을 지킬 수 있는가? 당신은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순교를 당할 수 있는가? 나 자신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보면, 솔직히 나는 그러한 박해와 순교를 감당한 만큼 큰 믿음을 갖고 있다는 확신을 할 수 없다. 이것이 보통 신앙인의 고백이라면 자유대한민국이 북한의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으며 주사파 정권이 그 위협을 조장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 크리스천들은 그러한 현실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 참혹한 현실 가운데서도 대형교회를 필두로 대부분의 교회와 목사 장로 그리고 신도들은 별 다른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구원은 개인 별이기도 하지만 민족이나 국가 별이기도 함을 우리는 구약 성서를 통하여 알 수 있다. 그리고 에스더 서나 느헤미야 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수 있는 국가를 유지하기 위하여 하나로 뭉쳐 기도하고 싸웠던 역사를 가르친다, 복음주의 신앙으로 무장한 퓨리턴들이 세운 미국의 헌법에는 자유 인권 등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치들을 지키는 조항들로 가득 차 있다. 하나님의 뜻이 담긴 헌법으로 운영되는 미국은 현대판 하나님의 나라이다, 미국의 헌법을 기조로 하여 제정한 대한민국의 헌법은 대한민국이 미국에 못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임을 확증한다, 우리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주기도에서 인간의 웰빙에 우선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서도 세워져 가기를 기도하라고 가르치신다. 하나님의 나라인 자유 대한민국이 위협 받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대부분의 신자들은 국가의 안위에는 무관하게 매일 자신과 가족, 구역 원이나 목사와 교회를 위한 기도에만 열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한국교회의 목사와 장로, 집사와 평신도들을 하나님께서는 과연 어떻게 보고 계실까? 하나님의 나라인 자유대한민국이 주사파 정권에 의하여 붕괴된다면, 당신이 강제적으로 믿음을 상실하게 되어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기 보다는 지옥불에 떨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생각을 해서라도 하나님 나라인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는 일에 열심하길 바란다. ◆ 김병구 장로는 싱가폴 장로교단 장립 장로, 시카고 '약속의 교회' 은퇴장로로서 바른구원관선교회를 섬기며 기독교신문 '크리스천투데이'에서 칼럼니스트로도 기고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영원한 성공을 주는 온전한 복음>(한솜미디어 펴냄)이 있다.        
    • 오피니언
    2019-08-05
  • 한국교회 침체에서 벗어날 길이 있다
    ▲여주봉 목사   나는 지난번에 이사야 하반부에 약속된 신약의 교회를 위한 유업 중 열방의 유업에 대해서 나누었다. 이사야 하반부에 약속된 모든 유업은 십자가의 복음에 주어진 유업이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신약의 교회는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터, 즉 십자가의 복음 위에 세워진 교회이다. 그 교회에 이 놀라운 열방의 유업이 주어질 것이다.오늘 한국교회의 세계 선교는 정체상태에 있다. 일부에서는 이미 줄어들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단순한 숫자의 문제에 앞서 선교사의 고령화는 매우 심각한 상태이다. 이것은 선교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교회 전반에 대한 문제이다. 많은 교회가 교회와 성도들이 함께 늙어가고 있다. 반 이상의 교회에 주일학교가 없다. 청년부가 따로 없는 교회는 그보다 더 많다고 한다. 당연히 재정적으로도 한국교회는 전혀 이전과 같이 않다. 한국교회 전반적인 상황이 그렇다 보니 세계 선교에 있어서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한국교회 전반에 대해서 그리고 한국교회의 세계선교에 대해서 위기감을 느끼며 자조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그래서 내가 하는 말이다. 교회가 앞에서 나눈 것처럼 십자가의 복음 위에 철저히 세워질 때 다른 유업들과 함께 열방의 유업이 주어질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의 다음 세대를 하나님께로 돌이키기 위한 거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계시다고 믿는다.조그마한 한 예로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하고 계신 일의 한 부분을 나누어 보겠다. 수년 전에 한 청년을 중앙아시아의 한 나라로 2년 단기선교사로 파송했다. 십자가의 복음 안에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서 귀하게 세워져 가는 청년이었다. 그러한 청년이 가서 그 나라에서 수고하는 선교사님을 도우며 섬겼더니 어른들이 하지 못하던 어린이 사역이 되어지고, 청년 사역이 되어졌다.그것을 본 주변 선교사님들이 그 곳을 방문한 우리 교회 해외선교위원회원들에게 그런 젊은이들을 파송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우리는 주로 20대의 젊은이들을 1년씩 단기선교사로 파송하기 시작했다. 우선 2명을 한 조로 묶어서 파송했다. 파송할 때 우리의 목표는 그들을 통한 사역이 아니라, 그들의 양육이었다. 그들은 가서 무엇보다 먼저 그 나라 언어를 배웠다. 그리고 그날 배운 그대로 캠퍼스에서 젊은이들과 교제하며 기회 되는 대로 전도했다.그들은 6개월만에 현지어로 간증하고 9개월만에 현지어로 설교했다. 그들은 현지인들을 섬기는 일에도 적극적이었고, 선교사님의 지도 아래 철저한 영성 훈련을 받았다. 같이 함께 지내다 보니 관계적인 면에서 ‘빡센’ 훈련이 되었고, 리더십 훈련도 자동적으로 되었다. 당연히 선교사님의 사역에도 적극적으로 협력하면서 사역의 훈련이 되었고, 어린이 사역과 청년 사역에 교회 안에서 매우 활발해 졌다. 교회는 한 사람 당 매월 100만 정도를 지원했다.그 정도면 그들이 그곳에서 충분히 생활할 수 있었다. 그들을 통해 생각하지 못했던 어린이 사역과 청년 사역이 일어나게 되자 그 선교사님이 그 사역을 지속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우리는 6개월 후 다시 두 명을 동일하게 그곳에 파송했고, 두 명이 1년 기간을 마치고 돌아올 때 다시 두 명을 파송함으로써 항상 그곳에 네 명이 남아 있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오늘 우리가 2+2 프로젝트가 탄생하게 되었다.그 열매는 일부 나눈 것처럼 참 놀라왔다. 하나님 중심적인 신앙으로 무장된 그들이 그렇게 가서 섬기니까 참으로 귀한 일들이 일어났다. 무엇보다 그들의 인생에서 참으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맨 처음 갔던 4명 중에서는 3명이 장기선교사로 지원했다. 그러한 사실을 듣고, 이것이 한국교회 다음 세대의 선교 동원을 위해 매우 중요한 한 방법이 되겠다고 생각한 KWMA의 요청에 따라 나는 작년 부산 수영로교회에서 있었던 세계선교대회에서 이것을 발표했다. 몇 년이 지나자 그 민족의 경우 99% 이상이 무슬림인 나라에서 청년부가 10명이 넘게 자라났고, 일부 청년들의 삶이 우리 단기선교팀원들과 교제하면서 놀랍게 변했다.한 자매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힘들어 하는 자매였는데, 그 1년 기간을 통해 놀랍게 바뀌고 특히 리더십에서 자라났다. 전혀 딴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놀라운 사실은 그들이 1년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교회에서 그리고 캠퍼스에서 귀하게 섬기도 있다.지금은 다음 세대 사역을 위해 사단법인 청년선교를 만들었다. 우리는 전국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귀한 자원자들을 모집하고, 그들을 훈련해서 열방으로 파송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을 돌보고 후원하려고 한다. 지금 현재 두 나라에 젊은이들이 나가 있으며, 이번 9월에는 세 번째 나라로 파송을 시작한다. 우리의 목표는 세계 250 지역으로 매년 1000명의 젊은이들을 파송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일을 함께 할 지도선교사 250명을 찾고 있다. 이 일은 군 선교, 캠퍼스 선교, 직장 선교를 연결하는 다음 세대 큰 프로잭트의 일환이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좀 더 나누고, 다른 분야들도 나누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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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연재
    2019-07-24
  • (이창엽 선교사칼럼)비움(Emptying)-채움(Filling)-섬김(Serving)
                                        비움(Emptying)-채움(Filling)-섬김(Serving)  불교의 영성은 비움이지만 기독교의 영성은 채움이다. 비움은 자기 자신의 부인이다. 기독교의 영성은 내 것을 비우는 것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것, 성령으로 채우는 것이다. 그리고 비움과 채움의 완성은 섬김이다. 섬김은 나눔이다.                                      중정형 구조의 마당 vs 자기 비움(자기 부인)  마당은 비움으로써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다. 마당이 집의 중심점으로 작용하는 중정형 구조에서 한옥의 문은 모두 하나같이 마당을 향해 열려 있는데 그것을 태극이라 할 수 있다. 외부에서 찾아오는 나그네 일지라도 별 차이를 두지 않고 모두 마당 안으로 맞아들일 수 있는 형국이다. 태극이 음양으로 분화되고 사상을 거쳐 팔괘로 전제되어 나가듯, 세상 사는 이런저런 얘기가 모두 마당 안으로 들어와서 함께 어우러지게 된다. 때로는 안마당과 사랑 마당으로 음양이 서로 나뉘기도 하고, 다시 사랑 마당과 행랑 마당으로 전개되면서 복잡다단한 우리 세상사를 어루만져 주기도 한다. 마당은 지금의 거실처럼 온 가족이 모이기도 하고 공동작업을 하기도 했으며, 집안의 대소사는 모두 마당에서 이루어졌다.  안동 지례 예술촌 * 한옥에서도 중정형 구조의 마당과 주변 환경에 따라 건물을 배치하였다.   (TIP) 자기를 비움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9:23) (대한성서공회,2019)          
    • 오피니언
    • 이창엽선교사
    2019-07-17
  • 교인수 1,500→150, 충격적 추락 “오히려 감사”
      ▲그동안의 교회사역과 교회 창립 35주년에 대해서 설명하는 좋은마을교회 신원규 목사   올해로 창립 35주년을 맞는 좋은마을교회(구 삼성장로교회) 신원규 목사를 만났다. 그는 교회 이름처럼 '좋은 사람들과 좋은 마음을 가지고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교회 놀이터에서 밝게 뛰노는 교회 아이들의 모습 때문인지 그의 모습이 더욱 평안해 보였다.     미국 남가주에서 20년 이상 살아온 사람들은 모두 알만큼 삼성장로교회는 유명한 교회였다. 1984년, 당시 29세였던 신원규 목사와 몇 가정이 함께 시작한 교회는 1990년대에 들어서자 무섭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남가주 이민교회에서 최초로 시작한 다니엘 특별새벽기도회는 실로 대단했다. 멀리 샌디에고에서 찾아올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매주 새신자들이 교회로 찾아왔고 한 주에 30~40명씩 몰려오기도 했다. 폭발적으로 교인 수를 늘려가던 삼성장로교회는 1천500명까지 출석하는 남가주 초대형 교회가 됐다. 1990년대 한인교회 가운데 성도수가 1천 명 이상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고, LA 대형교회들도 500명에서 800여명 수준이었기에 삼성장로교회는 더욱 유명세를 타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교회는 탄탄대로를 걷는 것처럼 보였다. 교회가 사람들로 북적이자 신원규 목사는 1999년 라하브라 지역에 있는 병원 건물을 교회당으로 매입했다. 650만 달러에 구입한 병원 건물은 11개 동이 있을 만큼 규모가 크고, 교통의 요충지에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가격이 뛰었고 10개월 만에 천만 달러까지 가격이 치솟았다. 그리고는 2004년 기도원 건물을 또 사들였다. 신원규 목사는 당시를 회상하며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평가했고, 나의 욕심을 하나님의 꿈과 열정으로 포장했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은행에 매달 내야하는 15만 달러에 달하는 이자는 교회 재정의 한계를 부추겼고,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가 터지자 교회 건물은 하루아침에 은행으로 고스란히 넘겨줘야 했다. 1,500명이었던 교인들도 결국 150명까지 줄었다. 눈부신 교회 성장만큼이나 삼성장로교회의 추락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그러나 신원규 목사는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한다. 고통은 컸지만 그 일을 통해 참된 교회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인이민교회 유형적 교회 아닌 선교에 힘쓰는 본질적 교회 돼야 2011년 삼성장로교회는 교회를 잃고, 다른 교회를 얻었다. 외형적 가치를 추구하며 세상에 드러나는 교회를 잃었다면, 하나님을 섬기고 선교에 힘쓰는 본질적 교회를 얻은 것이다. 삼성장로교회는 2015년 교회 이름을 좋은마을교회로 바꾸고 선교적 교회 모델을 따라 선교에 초점을 맞췄다. 교회는 예배당을 잃은 후 8년 전 고아사역을 시작했다.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 인도, 케냐, 코트디부아르 등지에서 먹지 못하는 먹지 못하고 방치된 아이들 326명의 아이들을 먹이고 있다. 또 7년 전부터는 제 3세계 목회자 훈련 프로그램으로 PM(preaching ministry)사역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으며, 교회가 오래 전부터 펼치던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을 위한 영성훈련 사역 GOG(Garden of Grace)도 순항 중에 있다. 신원규 목사는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낮추시고 겸손하게 다시 교회의 본질을 추구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 것은 특별한 은혜였다"며 "이번 창립 기념일에는 선교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베푸신 은혜와 감사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고자 한다"고 밝혔다. 좋은마을교회는 오는 9월 7일(토)부터 8일(주일)까지 창립 35주년을 맞아 MKW 고아사역 8년차 이사회 대회, PM 7년차 사역 감사예배, GOG 영성사역 28주년 감사예배를 가질 예정이다. 아래는 신 목사와의 일문일답 -힘든 시간들을 겪은 후 2011년 선교적 교회를 선포하며 새롭게 시작할 것을 다짐했다. 이후 교회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나? "우리 교회가 교회당을 잃고 떠나온 지 10년 가까이 됐다. 교회를 잃고 밖으로 나와보니 정말 예수님이,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특별히 누구에게도 돌봄을 받지 못하고 먹지 못하는 고아들이 먼저 보였다. 그래서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 인도, 케냐와 서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의 고아 326명을 돕고 있다. 특별히 캄보디아는 정부차원에서 고아들을 수치라고 생각해서 고아원을 폐쇄하기 때문에 고아들이 방치가 되고, 다른 가정에 위탁되어도 학대를 받기 쉽다. 심지어 장기 매매로 팔려가는 경우도 있다. '마이키즈월드'사역이라고 하는데 우리교회에서 한 아이에게 30-35불을 후원하면 현지 선교사가 식품을 사서 가정에 가져다 준다. 후원 아동으로 인해 한 가정이 음식을 먹게 된다. 또 PM(preaching ministry)라고 현지 목회자 훈련 프로그램을 열심히 해왔다. 일반적으로 목사 혼자 가서 현지 목회자들을 훈련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교회 집사 장로들이 함께 가서 평신도의 관점에서 교회 안내부터 행정, 목회를 전반적으로 돕는다. 일회성 프로그램이 아니라 매 회기 100명을 대상으로 4학기 과정을 교육하고 있다. PM은 미얀마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오래 전 미국 북침례교회에서 양곤에 집중적으로 선교를 했던 적이 있다. 군부독재시절 교회 소유였던 병원과 학교가 몰수됐었는데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지하교회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고 교회가 자리를 잡고 있다. 침례교회가 대다수라 장로교 목회자가 교육하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1년 가량의 오랜 인터뷰를 통과하면서부터 우리 교회가 양곤지역에서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교육하고 있다. 우리교회가 1992년도에 1기를 시작으로 27년 동안 진행해 온 영성훈련 GOG(Garden of Grace)도 선교지에 꼭 필요한 프로그램이다. 중동의 선교사들을 비롯해 남미,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전세계에서 진행돼 왔다. 한국에서는 1997년도에 농어촌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그동안 우리 교회 GOG를 경험한 사람들이 1200명일 정도로 많은 목회자들을 섬겨왔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모든 교회의 초점을 선교에 맞추고 구제와 복음전파, 목회자 양성 및 훈련에 맞춰왔다. 교회 건물 유지와 관리에 쏟아야 하는 에너지가 선교로 옮겨졌고 나부터도 개척 초창기처럼 성도들을 더욱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품을 수 있게 됐다. " -교인들의 반응은 어떤가? "예전에는 교회가 커야 하나님의 일을 크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작은 교회지만 하나님의 일을 예전보다 더 많이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교회 본질로 돌아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예배할 수 있어 좋아한다. 선교에 집중하면서 부터는 이런저런 아이디어도 내면서 기쁨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며 감사해 한다. " -교회 건축에는 여전히 회의적인가? "어떤 통계를 보니까 미국 전역에 있는 교회 예배당 가운데 75%가 공간활용을 못하고 있다고 하더라. 교회가 외형을 중시하는 가식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교회는 성도가 모이면 교회부터 지으려는 생각이 아직도 강하다. 또 예배를 많이 만들면 좋은 줄 안다. 100명 모이는 교회가 4부 예배를 드리는 것도 봤는데, 본질이 중요하다. 교회는 양떼를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 건물을 짓는 유혹에 현혹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교회 건물을 짖고 교인들이 다 떠나고 없으면 그 교회 건물은 어떻게 처리하게 되나? 중세 사회와 같은 타락이 만연하게 될 수 밖에 없다. 우리 교회가 이런 것에서 자유롭게 되고, 상한 부분이 있다면 회복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다. 교회가 반드시 필요하다면 지어져야 하겠지만 그것에만 초점을 맞춰져서는 교회의 본질을 잃어버리기 쉽다." -한인 이민자들이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 한인 교회의 미래를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한인 이민교회에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개인적으로 한인 이민 교회의 미래를 회의적으로 보진 않는다. 유대인들이 세계적으로 흩어져있는 것처럼, 디아스포라 한인들도 세계적으로 흩어져있다. 하나님께서 전세계로 퍼져있는 한국 민족을 사용하실 것이라고 믿는다. 한인 이민교회가 개선할 부분은 목회자들의 권위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한국에서 오신 목사님들 가운데 목회자의 권위를 과도하게 세우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한국적인 전통으로 자신의 의견을 성도들에게 밀어붙이려고 하지만 이곳에서 자란 아이들은 합리주의 문화에서 성장했다. 권위로 교회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 -한인 교회에 많은 사역이 있다. 오늘날 한인 이민교회가 집중해야 하는 사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민 교회가 1980년도 후반에는 선교의 바람이 불었다. 교회가 경쟁적으로 선교하던 시절이었다. 1990년도에는 교육으로 관심이 옮겨졌다. 교회가 교육관을 세우는데 사활을 걸었다. 그러다가 지금은 혼란 상태가 왔다. 교회가 물론 선교도 열심히 해야 하고, 교육에도 힘써야 한다. 그런데 모든 것의 근본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 그 근본이란 '목회자의 마음 속에 소외된 사람들이 모두 담겨지는 것'이다. 교회가 커지면 저녁에 성도들에게 전화 오는 것이 귀찮아진다. 이민 목회자가 해야 할 일은 '영혼을 가슴에 담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숫자가 목회가 아니다. 성도의 머릿수가 돈으로 계산되면 아무런 소망이 없다. 목회자의 생각과 사명과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목회자의 마음속에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영혼들에 대한 사랑으로 가슴이 뜨거워져야 하다. 오늘날 교회가 집중해야 하는 일은 무엇보다 영혼에 대한 사랑을 충만하게 회복하는 일이다. " -후배 목회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미주한인교계에 대형교회 하나가 나타나면 수많은 중소형교회는 문을 닫게 된다. 우리교회도 한 주에 3~40명씩 몰려올 때가 있었는데, 그때는 중소형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님들의 아픔을 몰랐다. 그러다 교세가 기울고 성도들이 나가는데 그 아픔을 알고 가슴으로 느끼게 되더라. 한창 교만하던 시절 교회가 부흥하니 100명 이하 교회 목사님들하고는 교제도 하지 않았다. 목사라고 했지만 마음의 철이 늦게 들었고, 주의 나라 갈 날이 가까워지니 우리 주님의 마음 '겸손'을 알게 되는 것 같더라. 나에게 30대가 주어진다면 진정한 주님의 목회를 다시 해보고 싶다. 눈에 보이는 유형적인 것에 목회의 사활을 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주님이 걸어가신 길을 같이 걷고 싶다. 많은 교회 목사님들이 목회를 하면서 삶의 터전에서 일을 하신다. 목사님뿐만 아니라 사모님도 일을 하신다. 우버 운전도 많이 하시는데 목회자가 삶의 터전에서 크리스천으로 사는 것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유형적인 것이 우리의 일이 아니라, 우리 삶 그 자체가 목회다. 우리 삶이 목회가 될 때, 더욱 성도들의 마음의 깊은 곳을 이해하고, 함께 할 수 있는 목회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 "좋은마을교회는 계속 선교적교회를 지향하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치과의사가 되어 의료선교를 펼치고 싶다. '지금 65세로 의사가 되면 70세인데 어떻게 선교를 하겠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는데,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명 다하는 날까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에 동참하고 싶다." -왜 치과의사인가? "캄보디아를 방문하는 중에 한 아이의 엄마가 퉁퉁 부은 얼굴을 붙잡고 아이를 업은 채로 신음하고 있더라. 너무 안타까워서 살펴보니까 이가 다 상해서 치료가 심각한 상황이었다. 치과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 연신 민간요법으로 나무 잎사귀만 씹고 있었다. 치아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더라. 그날 이후 '치과 의사가 되겠다'고 했더니 주위에서 모두 놀라더라. 그렇지만 슈바이처와 같이 사람들을 돕고 아픈 곳을 싸매며 남은 생애를 주님께 드리고 싶다."
    • 오피니언
    • 기고.연재
    2019-07-15
  • 예수가 정치 목사 강하게 책망한 장편소설 출간 화제
    모 목사 (전광훈 목사)의 대통령 하야 발언이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예수가 직접 한국에 와서 목사들에게 교회를 두고 정치권 주변을 맴돌지 말고 오직 “목회에만 전념하라”고 강하게 책망하는 내용의 재미있는 소설이 출간돼 화제다.   장편소설 ‘예수의 시크릿 노트’ (행복미디어 발행. 정우택 지음)는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며 목사가 거리에서 시위하자 예수가 이를 보고 목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고 엉뚱한 곳에서 정치적 목소리 내는 것을 책망, 충고하는 내용을 현실처럼 실감 나게 그리고 있다.  소설은 또 예수가 전도 많이 한 교인을 보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며 춤을 추는 모습이 나온다. (본문 100쪽) 주민과 교인이 하나 되는 아름다운 교회를 방문해 너무 기뻐 엉덩이 춤을 추기도 한다. (본문 413쪽) 기쁨과 감동에 취한 예수님의 엉덩이 춤이다.  어느 정치 행사장에서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여성들이 엉덩이 춤을 춘 것과 사뭇 다르다. 예수는 시위하는 목사에게 “교회에서 양 떼를 돌봐야 할 목사가 왜 이렇게 시국선언을 하고 법석이오? 누가 교회를 핍박하고, 박해라도 했소? 종교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때에 목사가 거리에서 시위하면 과연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고민해 보시오”라고 책망한다.  ‘예수의 시크릿 노트’는 순수한 장편 신앙 소설이다. 소설은 교회가 성경에서 멀어지며 물질주의, 세속주의, 자리싸움, 파벌싸움, 이단과 세습, 심지어 성문제인 미투 (me-too) 등 여러 불미스러운 문제가 불거지고 이런 얘기가 하늘나라에까지 들리자 하나님이 “한국교회를 감찰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예수가 급하게 오시는 것으로 시작된다.    예수는 300일간 한국교회를 돌아보며 책망, 칭찬, 권면하는 데 책망의 한 부분이 목사의 정치 활동이다. 저자 정 씨는 ‘예수의 시크릿 노트’는 10년에 걸쳐 완성한 장편 소설인데 마침 소설 출간과 일부 목사의 대통령 관련 정치 발언, 어느 당 여성의 엉덩이 춤의 시기가 비슷하게 맞아떨어진 게 마치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것 같다며 타이밍이 놀랍다고 했다. 예수가 시위하는 목사에게 “이유가 뭐든 여기는 당신들이 있을 자리가 아닌 것 같소”라고 하자 목사는 “그럼 우리는 어디에 있어야 하지요? 목사는 맘대로 소리도 못 지르고, 마음대로 다니지도 못한다는 것이오? 목사에겐 이전의 자유는 없다는 말이오?”라고 대꾸한다. 이에 예수는 “목사가 있어야 할 곳은 교회가 아니오? 성경 보고, 말씀 준비하고, 기도하고, 심방하고, 전도에 힘쓰는 게 당신이 해야 할 일이오. 목사가 교회를 지키지 않고 거리에 나와 시위 하면 교인은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이오.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게 목사 개인의 일인지 하나님의 일인지 잘 따져봐야 할 것이오”라고 말한다. 예수는 “하나님이 당신을 주의 종으로 세우신 것은 영혼 구원을 위해서요. 정치적 문제, 사회적인 문제로 세상 사람과 똑같이 소리를 지르고,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오. 목사가 정부에 반대하는 시국선언을 하고, 다른 쪽에서는 지지하는 선언을 하면 교인은 누구의 말을 믿고 따라야 하는 것이오?”라고 아프게 지적한다. 책망은 계속된다. 예수는 “목사는 자기 생각보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성도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 먼저 헤아려야 하오. 종교인은 종교활동에만 전념하고 정치권 주변에는 얼쩡거리지 않는 게 좋을 것이오. 종교 ‘탄압’이나 ‘박해’ 같은 사건이 없는 한 종교인의 영역을 이탈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오?”라고 아프게 묻는다. 예수의 한국교회 방문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누추하다는 이유로 교회에서 쫓겨나고, 광화문 네거리에서 고사 지내는 상을 뒤집어엎다 결박당하고, 목이 말라 교회에 갔다가 냉대를 당한다. 기도회에 갔는데 목사가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해운대 바닷가에서는 여자들의 유혹을 받기까지 한다. 예수는 교회를 이단에 팔아먹는 목사를 눈물이 빠지게 혼내기도 한다. 하지만 나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섬김이 너무 좋아 주민들의 칭찬이 자자한 목사에게 감동받아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어린아이가 건네주는 때 묻은 사탕을 받고 기뻐하고, 시장에서는 밥알이 볼에 붙을 정도로 맛있게 음식을 들고, 전도 왕을 보고 엉덩이 충을 덩실덩실 춘다. 숨겨진 천사를 만나 기쁨에 취하기도 한다. 예수는 교회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이 만난다. 안티크리스천을 만나 교회가 하는 일을 설명하고, 헌금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고, 세상과 교회를 왔다갔다 하는 교인에게 중심을 잡도록 권면한다. 또 가나안 교인에게는 다시 돌아오도록 말씀을 전한다. 예수가 한국에서 겪은 일은 지금까지의 생각, 시선으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소설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신앙생활 전반에 대한 가이드다. 올바른 신앙생활을 바라는 교인에게는 좋은 믿음의 안내자가 될 것이다. 목회자들에게는 자신을 돌아보면서 교인들과 가까워지는 지혜를 알려줄 것이다. 교인과 가까워지는 것은 성공 목회의 비결이다. 소설의 하이라이트는 해운대에서 예수를 무시하고, 반말하고, 유혹했던 두 여자가 300일 후 신앙생활을 아주 바르게 잘하는 여자로 변화된 것을 보고 예수가 춤을 추는 모습이다. 소설은 예수가 한국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환송을 받으며 비밀 노트를 가슴에 품고 하늘로 되돌아가는 극적인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책 이름 : 예수의 시크릿 노트 저자 : 정우택/ 분야 : 기독교 장편 소설/ 출판사 : 행복미디어/ 면수 : 664/ 가격 : 18,000원
    • 오피니언
    2019-07-07
  • [논평]기독교 주요 교단장의 청와대 초청에 나타난 평화, 통합, 그를 위한 기독교의 역할
    지난 3일 청와대는 한국 기독교의 주요 12개 교단(예장 합동, 통합, 고신, 개혁, 백석, 합신, 기감, 기장, 기하성, 기침, 구세군, 성공회) 총회장을 초청하여, 오찬을 나누었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우리 기독교가 대한민국의 독립과 근대화, 민주주의 발전과 인권, 복지 등에 큰 역할을 감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으며, 기독교의 역할에 대한 당부를 하였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으로 기독교계의 지도자인 여러 교단의 총회장을 청와대로 초청한 것인데, 지난 6월 17일 코엑스에서 개최된 국가조찬기도회에 대통령이 불참하여 기독교에 대하여 홀대했다는 여러 가지 불만의 소리가 있는 가운데 초청한 것으로 주목을 받았다. 언제부터인가, 기독교는 정부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적폐 대상처럼 여겨지는 상황이었는데, 대통령이 주요 교단 지도자들을 초청한 것은 나름 의미가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 기독교가 역사적, 사회적으로 지대한 역할을 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지금도 기독교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면서 남북한의 평화와 사회적 통합에 기독교가 나서 달라는 주문도 하였다. 이에 대하여 교단장들은 국가인권기본계획(NAP)의 차별 금지 조항에 대한 우려와 기독교 사학이 가진 고유의 종교행위가 역차별을 받거나 탄압을 받지 않도록 해 달라는 의견을 개진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이에 대한 확실한 답변보다는 원론적인 수준의 답변을 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은 기독교가 그렇게도 염려하는 것들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보여 진다. 우리 기독교가 사회적 분열을 막고 통합을 이루는데 앞장서고, 남북한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일에 앞장서는 것은 필요하지만, ‘가짜 평화’나 ‘위장된 평화’에 속아서는 안 된다. 지난 6월 30일 판문점에서는 한/미/북 3개국의 정상들이 모여 평화를 위한 회담을 했다고 하지만, 북한은 지난 7월 3일(미국 현지 시각) 유엔 주재 대사의 입을 빌어서, ‘미국은 실질적으로 점점 더 북한에 대한 적대적 행위에 광분하고 있다’는 거친 주장을 하였다. 또 ‘미국이 북한 제재와 압박에 대한 캠페인을 병적으로 하고 있지만, 자신들은 제재 해제에 목말라 하지 않는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였다. 그만큼 북한이 생각하고 추구하는 평화의 길과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는 상당히 차이가 있음이 분명하다. 우리는 한/미/북 지도자가 판문점에서 만났다고 감동을 받을 때가 아니라, 그 이벤트 속에 있는 허실을 발견하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가식적 평화나 평화적 제스처는 언제라도 바뀔 수 있다. 공산주의는 이미 전 세계에서 망했으나, 아직도 그것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있고, 북한은 자신들이 가진 체제, 공산주의 이념과 김 씨 왕조체제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우리는 성경에서, 전쟁이 임박하고 위기감이 높아질 때, 가짜 선지자들이 ‘평화’를 강조했던 경우들을 많이 보았다. 현상만 보면 속기 쉽다. 그러나 이면(裏面)을 보라. 평화는 내가 지킬 힘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지, 구호로만 외친다고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또 이 나라에서 통합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것은, 정치권에서 보여 지고 있는 보복과 단절과 ‘편 가르기’의 문제가 크다고 본다.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우리나라의 소통과 통합을 위해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국민들, 특별히 기독교계의 우국충정의 쓴 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대통령이 국가의 어려움이 있으므로, 기독교의 지도자들을 초청한 것인데,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지난 역사에 대한 칭찬만 늘어놓을 것이 아니라, 다윗이 선지자의 말을 경청하였듯이, 기독교계의 여러 목소리를 들을 자세가 필요한데도 그런 것 같지는 않아서 아쉽다는 판단이다. 또 교계 지도자들도 처음으로 청와대 초청으로 이뤄진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덕담으로만 끝낼 것이 아니라, 대통령 자신과 국가의 미래와 발전을 위한, 그리고 기독교와 관련된 고언(苦言)을 더 많이 할 수 있어야 했다.   정부는 최근에 교계에 북한 쌀 지원도 요청하고 있는데, 그것이 과연 북한 주민들에게 배분이 제대로 되는가도 살펴보아야 한다. 지금 북한 정권에 대해서는 유엔국가들이 제재를 가하고 있다. 이것을 피하기 위하여 에둘러가려고 기독교를 앞세우는 것은 아닌가 라는 의구심이 든다. 또 북한에는 인권 상황이 세계 최악으로 세계 유일의 정치범 수용소에는 약 5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강제 수용되어 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이 같은 악행에 대하여 덮어두고 모른 척 한다는 것은, 기독교계가 악한 범죄에 동조하는 것 내지, 인정하는 것에 다르지 않다. 또한 현재 북한에 감금/억류된 목사/선교사 등 우리 국민이 6명이나 있는데, 이들 석방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가 책임 있게 나서도록 요청해야 한다. 그 분들도 대한민국 국민이 분명하지 않은가? 한국교회가 전적인 협력으로 평양과학기술대를 지어 주었지만, 과연 그것이 선한 목적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북한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법적인 국제 해커를 양산하여 범죄를 일삼는 나라로 유명해졌다. 한국교회가 북한을 돕는 것은, 그야말로 인도적 차원이 되도록 신중해야 한다. 또한 한국교회가 북한을 돕는 그 돈은 성도들의 귀한 헌금으로 이루어지는 것임도 잊지 말아야 한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청와대 초청을 통하여, 평화, 통합을 위한 기독교의 역할을 요청받았다. 그 일을 어떻게 풀어가며, 어떤 방법을 취할 것인지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북한을 돕는 것이, 현 지구상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재와 전재 국가인 북한 정권의 정권 연장 수단에 이용되어서는 안 되며, 북한 주민을 위하고 실제적인 평화와 통일의 기초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때로는 정권의 입맛에 맞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 주민을 위한 것이 먼저 고려가 되어야 하고, 두 번째는 북한의 변화와 책임을 이끌어 내는 방법들이 되어야 한다. 한국교회언론회(대표 유만석)
    • 오피니언
    2019-07-07
  • (이창엽 선교사칼럼)칼럼을 시작하며
                                                            칼럼을 시작하며  주막에서 밥이 끓는 잠깐 사이 한숨 자고 일어나니 수십 년이 흘렀고, 동굴에 잠깐 다녀온 것 같은데 백발이 되었다는 도연명의 무릉도원의 노래가 가슴 속에 절로 흘렀다. 그렇게 세월이 화살처럼 지나가고, 자연의 숨결 “전통한옥과 교회건축” 퇴고 중, 기독신문 ‘이창엽 선교사 칼럼’을 집필하기로 하였다. 설레임과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오면서 사명감까지 더해져 부담스러웠다. 우선 동양 건축인 한옥과 서양 건축인 교회가 상충하고 있고, 문화적으로 동양사고와 서양사고가 상충되고, 대립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리라 확신하면서 시작하기로 한다.                                        살아 숨 쉬는 자연의 생명 vs 완결된 생명 단위  칼럼(column)의 어원은 ‘기둥’을 뜻하는 라틴어 ‘콜룸나(columna)’에서 나온 말로 ‘원주(圓柱)·원주 모양의 것’의 뜻이다. “나라의 동량(棟樑)이 되라”는 우리말 속담도 있다. 동량은 기둥과 대들보를 아우르는 말이다. 세상의 중심이고, 건물의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서양의 기둥과 동양의 기둥은 차이가 난다. 서양의 기둥은 완결된 생명 단위를 사용하지만, 동양의 기둥은 살아 숨 쉬는 자연의 생명을 차용한다. 살아 숨쉬고 생명력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기에 동양의 기둥이 적합하다고 본다.    서산 개심사 요사채 심검당                                                                    그리스 에렉테움의 여신주상 (나무를 휘어진 모습 그대로 기둥으로 세웠다.)                                              (완결된 생명 단위를 사람으로 세웠다.) 본 칼럼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데 전통한옥을 ‘전통’으로만 바라보지 않았다. ‘한옥교회’라는 사전적 의미에 ‘한옥’은 동양적인 것을, ‘교회’는 서양적인 것을 내포하고 있기에 서양 건축물과 비교하는 방법으로 전통한옥을 살펴보았다. 또한, 우리 삶의 대부분이 서양 건축의 환경이기에 전통한옥의 장점과 우수성을 관찰할 수 있고, 하나님을 알아가기에 적합하다고 본다.                                                                                                                                                                                                                                                                    지리산 퇴수정에서                                                                                                                                             이창엽 쓰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언16:9)    
    • 오피니언
    • 이창엽선교사
    2019-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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