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19(토)

선교뉴스
Home >  선교뉴스  >  선교사

실시간 선교사 기사

  • 릭 워렌 목사 “교회 성장을 위한 6가지 전도 방법“
      ▲릭 워렌 목사. ⓒNRB 제공   <목적이 이끄는 삶> 저자인 새들백교회 릭 워렌 목사(Rick Warren)가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한 6가지 전도 방법’을 소개했다.     이는 처치리더스닷컴(churchleaders.com)에 릭 워렌 목사가 기고한 ‘6 Key Evangelistic Strategies to Help Your Church Grow’를 문화선교연구원에서 번역·편집한 것이다. 릭 워렌 목사는 “교회 건강이 교회 성장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건강한 교회가 성장한다. 이런 교회는 예배를 통하여 더 굳건해지고, 동료애를 통해 더 따뜻해지고, 제자도를 통해 더 깊어지고, 목회를 통해 더 넓어진다”며 “건강한 교회는 전도를 통하여 더 성장한다. 건강한 교회는 예수님의 모습을 따라 복음으로 믿지 않는 사람에게 다가간다”고 말했다. 다음은 릭 워렌 목사가 소개한, 예수님을 본보기로 교회가 믿지 않는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6가지 전도 방법.   1. 누구에게 다가가려는지 알아야 한다. 교회는 모든 사람에게 다가갈 수 없다. 예배를 준비하고 찬양을 선택하는 순간, 다가가려는 사람에게 또는 반대로 다가가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다가가려고 한다면, 아마도 아무에게도 다가가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특정한 전도 목표가 있으셨던 것을 알고 있다(마 15:24). 물론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예수님은 모두를 사랑하셨다. 그리고 여전히 사랑하신다. 그러나 잃어버린 양 이스라엘을 목표로 전도하시는 것이다. 이런 공식은 베드로와 바울(갈 2:7)도 마찬가지다. 예수님과 베드로, 바울이 특정한 사람을 전도 목표로 삼는 것을 낫게 여긴다면, 우리도 이에 따르는 것이 낫다. 2. 불신자의 생각을 이해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매우 효과적으로 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이 사람과 관계를 맺었던 복음의 예를 읽어보자. 특히, 마태복음 9장과 12장, 마가복음 2장, 누가복음 5장과 9장, 11장을 읽어보자. 성경은 종종 예수님께서 사람이 생각하는 것을 아셨다고 쓰고 있다. 사람의 출신을 안다면 다가가기가 훨씬 더 쉽다. 하지만 믿음 생활한지 오래될수록, 불신자처럼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만약 목회자라면, 불신자와 생각이 훨씬 더 멀다. 이 차이를 해소하려면, 불신자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릭 워렌 목사는 40년 전 새들백 밸리에 온 뒤, 교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4가지 기본 질문으로 그 지역 공동체를 조사했다. 그 지역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3. 가장 수용적인 사람들에게 집중해야 한다. 예수님의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마 13:1-23)에도 나오는 이야기이다. 어떤 사람들은 특별히 복음에 열려 있다. 사람의 마음을 여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우리의 일은 사람들이 준비되었을 때 복음을 충실히 나누는 것이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오게 하기 위해 힘을 쓴다면, 이들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이다. 성장하는 교회는 수용적인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데 집중한다. 4. 전도 대상자가 결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친구 존 윔버(John Wimber)는 빈야드 교회 운동(Vineyard Church movement)을 이끌었던 친구다. 그는 목회 초반 이웃에게 설문조사를 해서 젊은 부부가 자녀에게 용변 교육을 가장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교회에서 기독교 심리학자와 용변 교육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런 식으로 수십 쌍의 젊은 부부들에게 다가갔다. 우리의 조건대로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없다.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우리가 정한 시간에, 우리 교회로 예수님께 왔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할 수 없다. 이런 식으로는 사람에게 다가갈 수 없다. 사람에게 다가가려면 유연해야 한다. 새들백교회에서 사람들이 예수님께 다가가기 위해 미리 준비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상황에 맞춰 계획했다. 5. 사람들에게 선택권을 제공해야 한다. 우리는 선택의 세계에 살고 있다. TV 채널, 음료수, 커피의 선택권을 보자. 선택권은, 더 많은 새신자들을 만나 예수 그리스도께로 초청하는 일을 도울 것이다. 교사, 소방관, 경찰에게 다 다르게 다가갈 수 있다. 성장하는 교회들은 일명 ‘침투 전도(saturation evangelism)’을 실행한다.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가능한 필요한 모든 수단을 쓰는 것이다. 6.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집중해야 한다. 이는 신약 성경에 나오는 기본 전략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다가간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한 일을 보자. 안드레가 누구를 예수님께 데려왔는가? 형 베드로를 데려왔다. 마태는 다른 세리들을 데려왔다. 우물가의 여인은, 마을 전체를 알았기 때문에, 마을 전체를 데려왔다. 여러분의 교회는 특정 부류의 사람들에게 다가가도록 잘 맞춰져 있다. 하나님은 모든 부류의 사람들에게 다가가도록 모든 부류의 교회를 만드셨다. 계속 성장해 나가자.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다가가도록 하자.
    • 선교뉴스
    • 선교사
    2019-07-22
  • "군산에 묻어달라"던 서양인이 125년 전 남긴 사진
      ▲  구암산 아랫동네 모습(사진 위는 구암병원과 영명학교)   구한말 전북 군산 지역 주민들 생활상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 전시회가 군산시 장미동 군산근대역사박물관 3층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 기간은 5월 18일~6월 2일까지. 행사를 주최한 (사)전킨기념사업회 전병호 이사장은 "전시된 사진은 모두 40여 점으로 군산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전킨 선교사가 찍은 사진이 대부분"이라고 말한다.전킨 선교사는 1893년 전라도 지역을 처음 답사하고 1895년 가을 드루 의료선교사와 함께 군산에서 선교 활동을 시작한다. 이후 수많은 교회와 학교, 병원 등을 설립한 그는 1907년 폐렴으로 몸져눕게 되고 이듬해(1908) 1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는다. 따라서 사진 속 풍경은 112년~125년 전 군산 모습으로 추정이 가능하다.   ▲  전병호 이사장이 사진을 보내준 프레스톤(전킨 손자) 선교사 부부를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전 이사장은 한 부부 모습이 담긴 사진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갔다. "이 두 사람이 사진을 보내준 '프레스톤' 선교사 부부입니다. 프레스톤은 전킨 선교사 손자인데, 제가 쓴 책 <호남 최초 교회 설립자 이야기, 전킨 선교사>를 읽고 감동해서 전킨 할아버지가 찍은 사진을 보내줬다고 그래요. 두 사람 뒤로 한국식 장롱이랑 족자랑 보이죠. 프레스톤도 할아버지를 따라 한국을 무척 사랑한다고 합니다."   전시 사진 중 충남 장항을 배경으로 찍은 군산 지역 주민들 모습을 비롯해 우리나라 서해안에서 행해지던 수상장(樹上葬), 호남 최초 서양의료기관으로 알려지는 군산 구암병원(궁멀병원)과 영명학교, 만자산교회 남녀 신도 단체사진, 구암산에서 바라본 죽성포구(째보선창) 치료 후 감사 표시로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달걀 꾸러미 사진 등이 눈길을 끈다.구암병원 사무원으로 근무하던 1919년 3월 군산영명학교 졸업반이던 동생(양기철)과 함께 삼일만세운동에 앞장서 참여했다가 두 형제가 나란히 옥고를 치른 양기준(군산 최초 야구인) 선생 가족사진, 고즈넉한 농촌풍경(구암산 아랫마을), 마을 빨래터에서 빨래하는 아낙들 사진은 한동안 발길을 멈추게 했다.   120년 전 군산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  120여 년 전 군산 주민들 모습     이 사진은 금강과 충남 장항이 카메라에 잡힌 것으로 미뤄 수덕산 아래 해변에서 찍은 사진으로 보인다. 지게에 똥장군과 함지박을 짊어진 두 노인과 팔짱을 낀 채 상대방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청년, 저고리 차림에 가죽가방을 들고 있는 젊은이 등 모두 신도로 보인다. 특히 그들의 자연스러운 표정이 조용한 어촌마을 풍경과 어우러지면서 무척 평온하게 느껴진다.   ▲  서해안 도서 지방에서 행해졌던 ‘수상장’ 모습. 나뭇가지 중간에 시신을 싼 가마니가 보인다.   위는 처음 보는 '수상장' 모습이다. 수상장 사진은 가까이서 찍은 것과 멀리서 찍은 두 장이 있는데 이 사진은 가까이서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전병호 이사장은 "전킨 선교사는 배를 이용해 금강, 만경강, 고군산군도 섬 지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파했는데 산 높이와 나무가 우거진 것 등으로 미뤄 고군산 어느 섬에서 찍지 않았나 생각된다"라고 말한다."저도 이러한 모습을 본 기억이 없어 참 신기했어요. 시체를 굵은 나뭇가지 위에 올려놓는 장례를 '수상장' 혹은 '수장'이라고 합니다. 주로 시체를 가마니로 싸거나 관이나 항아리에 넣어 나무에 올린다고 합니다. 섬에서 어린아이가 죽으면 '수상장'하는 사례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특히 선유도는 일종의 '풍장'으로, '세골장'인 '초분' 풍습이 최근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  마을 빨래터 모습 빨래터 사진은 구암동 둔덕천 입구에서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둔덕천은 군산에서 유일한 자연 하천으로 입구 부근에는 빨래하기 좋은 널찍한 바위가 여러 개 놓여있었다. 상수도 시설이 없던 시절 공동 빨래터였던 것.부잣집 대청마루처럼 널찍한 바위에 질펀히 널려놓은 뽀얀 무명치마와 저고리들, 광주리에 담긴 빨랫감 뭉치, 한가롭게 소꿉장난하는 아이들, 빨래 헹구기에 여념이 없는 아낙들 모습 등이 옛 향수를 자극하면서 '화난 며느리 빨래 두들기듯 한다'는 속담을 떠오르게 한다.우수 경칩이 지나고 얼었던 시냇물이 풀리면 동네 빨래터는 분주해졌다. 아낙들이 가슴에 쌓였던 스트레스를 훌훌 털어내기 위해 모여들었던 것. 아들 자랑, 딸 자랑, 며느리 자랑, 사위 자랑을 비롯해 바람피우는 남편 때문에 속상했다는 얘기 등이 격의 없이 오갔던 빨래터는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였다. ▲  양기준 선생 가족사진   양기준 선생 가족사진이다. <군산 야구 100년사>(2014)에 따르면 양기준은 1896년 군산구암교회 초대 장로인 양응칠의 장남으로 태어나 영명학교 야구부 선두타자로 활약했다. 삼일운동에 참여했다가 6개월 옥고를 치른 후 이리(익산) 삼산의원에서 조수로 근무하였고, 1932년 한지의사(限地醫師) 면허를 취득, 무의촌 지역 공의로 전염병 예방에 힘썼다. 광복 후에는 전북 익산시 보건소장, 경기도 강화군, 연평도 진료보건소장 등을 지냈다. ▲  메리 레이번 여선교사와 초창기 군산 주일학교 학생들   메리 레이번 선교사(전킨 선교사 부인)와 군산 주일학교 여학생반 사진이다. 레이번 선교사는 지금의 군산영광여고(멜볼딘여학교 후신)와 인연이 깊다. 멜볼딘여학교 수업을 그의 안방에서 처음 시작한 것. 그는 학교를 설립하고 조사(助事)인 김씨 부인과 함께 마을을 찾아다니며 학생을 모집했는데, 그 속에는 양갓집 규수, 여종, 30대 부녀자 등이 뒤섞여 있었다고 한다.레이번 선교사는 건강이 악화된 남편을 따라 전주로 이주한다. 그 후임으로 온 엘비 선교사(부위렴 선교사 부인)가 자신의 모교인 미국 메리볼딘대학에 지원을 호소하였고, 그곳 대학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이 모금 운동에 나섰다. 미국 여대생들이 끼니를 거르거나 빵장수를 해서 보내준 기금을 토대로 3층 교사를 신축할 수 있었다. 그 후 메리볼딘대학 학생들과 졸업생들의 고마움을 기리는 뜻에서 '군산멜볼딘여학교'라 부르게 됐다고 전한다. 1904년에 찍은 대야 만자산교회(지경교회 전신) 남녀 신도 단체 사진이다. 남신도 사진에서 전킨 선교사와 가마꾼으로 보이는 두 남자가 시대를 반영한다. 사진 속 인물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들의 옷차림과 표정은 물론 신발에서조차 궁색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는 구한말 군산 지역 농촌이 알려진 것처럼 그렇게 옹색하거나 가난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이 사진은 양국주 선교사가 제공한 사진이에요. 자세히 말씀드리기는 곤란하고, 아무튼 숨겨진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리고 여신도 단체 사진 맨 왼쪽 엄마 품에 안겨있는 꼬마가 '이순길'이라고, 훗날 훌륭한 선생이 됩니다. 공부를 잘해서 전주 기전여학교 선생님이 되는데 그 밑에서 공부한 여학생이 상공부장관과 중앙대학교 총장을 지낸 '임영신'이에요.이순길 이야기는 제가 쓴 책에도 소개됩니다. 젖먹이 때 눈이 아팠는데 어머니가 30리 떨어진 군산 드루 의료선교사에게 데리고 가 치료받고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 후 부모의 믿음 안에서 잘 자라 군산 멜볼딘여학교와 서울 정신여학교를 졸업하고 기전여학교 선생이 되죠. 그때 이순길이 임영신을 충남 천안의 모 학교(良垈學校) 교사로 소개했다고 합니다."앞에서 소개한 사진 외에도 미국 필라델피아 역사관에 보관 중인 조선선교부 지도를 비롯해 최초로 호남 땅을 밟은 7인의 선교사(레이놀즈, 펫시 볼링, 전킨, 매리 레이번, 테이트, 매티, 리니 데이비스), 초창기 군산 지역 교인들, 전킨 선교사와 자녀들 묘(구암동산), 전킨 선교사가 조선에 파견되기 전 다녔던 신학교 및 대학교 사진 등도 전시되고 있다.   조선과 군산을 사랑했던 전킨 선교사     ▲  전킨 선교사 집 사랑방에 모인 교인들. 창문의 커튼, 자명종, 서구식 의자, 테이블, 난로, 벽에 걸린 액자 등 가재도구와 실내 장식이 이채롭다.   전킨(1865~1908) 선교사는 미국 버지니아주 출신이다. 유니언 대학을 졸업하고, 언더우드 선교사 귀국보고회 때 감동하여 아름다운 나라 조선 선교를 꿈꾸게 된다. 1892년 11월 미국 남장로회 '7인의 선교사(7인의 선발대)' 일원으로 조선 땅을 처음 밟는다. 서울에서 조선어를 배우고 조선의 문화와 생활을 체험한다. 1895년 3월 드루 의료선교사와 함께 군산 수덕산 기슭에 초가 두 채를 매입하여 의료선교 활동을 펼친다.군산이 개항하는 해(1899) 12월 지금의 구암동산에 선교스테이션을 세운다. 병원, 학교, 교회 설립 등 선교 활동을 활발히 펼치면서 아들 셋을 잃는 아픔을 겪는다. 1904년 몸져눕게 되고 전주에서 휴양하라는 선교본부 결정에 따라 군산을 떠난다. 전주에서도 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그는 1908년 1월 2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다. 그는 숨을 거두기 전 이렇게 되뇌였다고 한다.                                    
    • 선교뉴스
    • 선교사
    2019-07-18
  • 캄보디아 한인선교사회 초청 신학강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강조
    캄보디아 한인 선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신학강좌가 프놈펜 예수사랑가족교회(담임목사 송신근)에서 9일 오전 9시부터 11일까지 총신대 신대원장을 역임한 세계적인 조직신학자 서철원 박사를 강사로 초청해 진행되고 있다.   캄보디아 한인선교회 사역분과위원회가 주최한 이번 신학강좌는 현지 목회자와 선교사들이 바른 신학의 기초 위에 교회와 사역을 감당하도록 돕기 위해 기획됐다. 서철원 박사의 제자인 강창윤 선교사가 현지의 상황을 안타깝게 여겨 서 박사를 초청하면서 시작됐다.   강 선교사는 현재 거주하는 선교사회와 한인회 전체에서 가장 오랫동안 이곳에서 사역하고 있다. 강 선교사는 “지난해 600개 현지인 교회가 이단으로 넘어갔다.”며 “바른 신학를 교육하는 일이 중요하다.”며 서철원 박사 초청 신학강좌를 개최한 배경을 밝혔다.   서철원 박사는 “19세기 부흥운동을 주창했던 찰스 피니는 장로교 목사였다. 그는 장로교 신학을 버리고 완전 성화를 주창했다. 미국 장로교가 감리교회화 되도록 했다. 그는 결신기도를 시키면서 ‘내 전도가 헛되지 않았다’는 확신을 갖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목회자나 선교사들은 듣든지 아니 듣든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한 것이다. 성령께서 예수 믿게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서 박사는 “성령은 복음 선포에만 역사하신다.”며 “성령은 전도자로 오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 얻고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 복음의 내용이다. 그렇게 선포하면 결신을 유도하지 않아도 성령이 역사하시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울의 새관점학파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서 박사는 ““지금 한국교회나 전 세계 복음주의가 칭의가 문제가 되고 있다. 칭의론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다.”며 “예수 믿으면 의롭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 자신을 뜻한다. 예수는 창조주이시다.”고 말했다.   서 박사는 “영국의 성공회 출신 신학자 E.P 샌더스, 제임스 던 등 바울의 새관점학파의 주장에 의하면 ‘율법은 그대로 지키고 예수 믿는 것이다. 바울이 유대교를 배도하고 간 것이 아니다. 예수 믿음과 율법 준수를 겸해야 완전한 구원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톰 라이트는 새관점학파 2세에 해당한다.”며 “그러나 우리는 예수만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고 그것이 우리가 믿는다.”고 강조했다.   서 박사는 “바울이 가르친 핵심은 우리가 두렵고 떨림으로 복음을 선포하면 성령이 역사하셔서 믿음으로 죄용서 받고 새롭게 된다.”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서 박사는 “사도 바울은 성령의 나타나심의 능력으로만 복음을 전한다고 했다."며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 박사는 “희랍 사람은 몸은 영혼의 무덤이고 감옥이라고 했다. 칼빈도 [기독교 강요]에서 그렇게 썼다.”며 “웨스트민스터신학교 공부할 때 변증학자인 코넬리우스 반틸에게 ‘어떻게 그렇게 쓸 수 있는가’라고 했더니 ‘그것은 15세기 인문학의 잔재’라고 하더라.”고 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서 박사는 “기독교 복음은 인간이 도저히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다. 오직 성령만이 가능하다.”며 “풍성한 복음을 전달하면 성령이 역사하신다. 한국교회 초기 최봉석(최권능) 목사가 ‘예수 천당, 불신 지옥’만 외쳐도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 교회 설교는 윤리적인 설교가 주종을 이룬다.”며 “예수의 인격과 십자가, 부활의 복음을 선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 선교가 실패한 것”이라고 했다.   서 박사는 “E.P샌더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하는 것은 바울의 가르침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했다.”며 “그는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신실하다고 해야 한다. 그것이 의롭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 민족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다‘는 것이다. 새관점학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이러한 가르침이 한국교회에 들어왔다. 큰 문제”라고 말했다.   서 박사는 “나는 총신에서 강의를 하면서 E.P 샌더스를 이단이라고 했다. 가톨릭은 믿음과 행함으로 구원 얻는다고 가르친다.”며 “그러나 우리는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고 구원에 이른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서 박사는 “한국교회 축복설교를 열심히 한다. 이제는 새관점학파의 이론과 E.P샌더스의 가르침으로 유보적 칭의론이 성행하고 있다. 역사 끝에 가서 의롭다고 판정을 얻고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친다.”며 우려를 나타내고 “그러나 우리가 믿는 이신칭의 교리는 신약의 복음”이라고 강조했다.
    • 선교뉴스
    • 선교사
    2019-07-09
  • 한일장신대 설립자 서서평 선교사 국민훈장 동백장 추서 기록 발견
    한일장신대(총장 구춘서) 설립자인 서서평(본명 Elisabeth Johanna Shepping) 선교사가 1969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추서받은 기록이 50여년만에 발견됐다.      이 기록에 따르면 서서평 선교사는 1969년 9월 11일 국무회의를 거쳐 9월 16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민훈장 동백장은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 인물에 수여되는 것으로 국민훈장에서는 3번째 등급에 해당하는 매우 높은 등급의 훈장이다. 특히 외국인이면서 서거한지 35년이 지난 1969년에 대통령과 국무총리 이름으로 추서된 것은 매우 특별하고 의미있는 일이다.   서서평 선교사는 △기독교금주회 조직으로 여성들을 선도하고, △고아들의 입양과 양육에 노력했으며, △한국간호원협회(현 대한간호사협회)를 창립해 국제간호원협회에 가입시켰고 △성경교육을 통해 여성계몽사업에 헌신해 우리나라 문화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 자료는 서서평연구회(회장 임희모․한일장신대 명예교수)에서 서서평 선교사가 훈장받았다는(honor) 단서 하나를 갖고 추적을 거듭, 대전 국가기록원의 외국인코너에서 발견하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그러나 훈장의 원본은 찾아볼 수 없어 훈장 번호를 제외한 내용은 당시 훈장 형식에 맞춰 재구성했다.   서서평 선교사의 국민훈장 추서 의결과 절차, 훈장증 내용 등은 서서평연구회에서 최근 출간한 『동백(冬柏)으로 살다 서서평 선교사』 에 실려 있다.   임희모 회장은 “외국인이어서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았는데 기록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며 “우리대학 이름이 명시되어 있지 않은 점이 아쉽지만, 학교의 위상과 영예를 드높이는 것은 물론 대학 구성원 모두가 자부심을 가져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추서 기록 발견을 기념해 시인인 이종록 교수(한일장신대 신학과)는 ‘동백(冬柏)으로 살다’라는 제목의 시를 바쳤다.
    • 교계뉴스
    2018-12-27
비밀번호 :